그림과 글/김경성
물컹한 슬픔 2 / 김경성
솔뫼 김성로
2009. 1. 9. 09:35
물컹한 슬픔 2 -사과나무
시 : 김경성
그림 : 김성로
한 사람이 무릎 꿇고 앉아 먹을 갈았다
맑은 물이 먹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제 빛을 잃었을 때
그는 마음속의 심지를 꺼내서 그림을 그렸다
붓끝이 휘어질 때마다 나는 부러질 듯 몸을 구부렸다
화선지 너머까지 나아갈 수 없었다, 화선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잘 드는 칼날에 몸을 베이는 일이었으므로
거미의 다리처럼 몸을 구부려서
꺾어진 관절마다 베인 상처의 틈
을 헤집는 찬바람 눈물겨운 일이어서
휘어진 그대 가슴 속으로 몸을 밀어 넣고
꺾인 몸 사이사이 꽃망울 걸어놓았다
꽃 지고 몇 번의 태풍이 지나고 나니 여름이 갔다
먹물 찍은 붓이 지나간 자국마다 조금씩 더 깊은 그림자 졌다
붉은 꽈리 밀쳐두고
그의 마음속 심지가 있는 곳에
눈물 담뿍 들어 있는 붉은 등 내다 걸었다
펴지지 않는 굽은 등뼈 마디마디 환했다
그제야, 먹물 빛 사라지고 화선지 가득 붉은 꽃물 흥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