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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말하다] --- 김성로
얼굴(THE FACE) 연작에 대하여 / 솔뫼 김성로
THE FACE-사랑. 50F. 아크릴,캔버스. 2010 THE FACE- 평화. 50F. 아크릴,캔버스. 2010
파주시 어유지리를 지나 임진강을 건너면 고려의 종묘라고 할 수 있는 숭의전이 나온다.
가파른 적벽 위로 아미산 자락이 이어져 있고 숭의전 앞에는 수령이 500년 이상이 된 고목 두 그루가 긴 세월의 애증을 담고 임진강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강물에 비친 내 얼굴에 방금 스쳐 본 숭의전 위패로 서있던 고려시대 위인들의 모습과 하늘의 구름, 아미산의 나무들도 함께 비치고 질곡의 세월, 그 애환들도 강물 따라 함께 흐르고 있다.
얼굴 / 김성로
숭의전을 지나
아미산 절벽 끝에 서니
봄날 짙푸른 임진강에 내 모습이 일렁인다
강물 위 떠있는 저놈은 무얼까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이놈은 또 무얼까
부모가 지어준 이름자 뒤
지위와 신분, 물질과 명예 뒤에 숨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희비로 쌓인 놈
가진 것이 무어냐
얻은 것이 무어냐
저무는 강물 위 홀로 그림자에 물어보니
아무것도 없다, 정작 이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평생을 아등바등 악을 써대며
배우고 모으고 행한다 했건만
돌아갈 이놈에겐 아무것도 붙어 있질 않는구나
고려의 태조여, 현종이여, 신숭겸. 서희. 강감찬. 정몽주여
천년세월이 흐른 뒤
이놈이 나인가, 너인가, 임진강인가
아까부터 주린 배를 채우려 선회하는
저 새인들 알겠는가?
다만, 씁쓸히 미소 지을 뿐
(졸시 전문)
임진강은 적벽 사이로 구불구불 눈 닿은 데까지 늘어져 있고 야트막한 구릉들이 점점이 이어져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강물과 고목 사이를 천천히 선회하는 독수리가 생(生)은 구름같이 허망한 것이라고,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한 시절일 뿐이라고 알려주는듯 싶다.
작업실로 돌아와 화선지를 펼치고 먹물을 풀어놓았다. 원래는 임진강의 서정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붓을 드니 강물에 비친 세월의 무게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림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 나 역시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는 짧은 생일진대 무엇을 두려워하랴. 화폭에 커다랗게 얼굴의 형상을 그리고, 그 얼굴 속에 자연의 모습들을 그려넣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에는 눈으로 보이는 겉모습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내면의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환경과 생각, 감정 등 모든 것이 담기기 마련인 때문이다. 그 때문에 얼굴이라는 주제는 감상자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
발상은 물에 비친 얼굴이었지만 그려 나가면서 내용이 차츰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작업은 몇 달,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완성할 때쯤이면 애초의 감정은 점차 변하고 더해져서 주제는 명료해지는 데 반해 감흥은 차츰 변질하기 쉽다.
위 그림(THE FACE-평화)을 제작하면서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것이 이전의 작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양식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과 자연은 긴 세월 속에서 같은 무게를 지닌다. 주어진 짧은 생에서 가능하다면 사랑과 평화 속에서 살고 싶다. 모든 것이 하나이므로 모두 아껴주고 사랑하고 포옹하고 싶다.
THE FACE-행복. 50F. 아크릴,캔버스. 2010 THE FACE- 희망. 50F. 아크릴,캔버스. 2010
작가에게 있어 새로운 표현형식의 창조는 가슴을 뛰게 하는 기쁨이다. 작가는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고 그 작업을 통하여 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다. 언제부터인가 밤늦게 자정 너머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가끔 '내가 왜 이렇게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즐겁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 빠지다 보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야외에 나가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글을 볼 때도 그것이 이미지화 되어 머리속에 각인되어 버린다. 이는 어찌할 수 없는 매혹이다. 바로 스케치를 하거나 작업실로 뛰어오기 마련이다. 아내와 식구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여 신경도 쓰질 않는다.
시(詩)에는 여백이 있다. 그 여백이 감동의 여운으로 마음의 울림을 주고 있다. 시를 분해하여 나열해 놓으면 시적 감흥이 사라진다. 시를 읽는 독자는 각자 자기의 경험과 감성을 바탕으로 감상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시를 분해하여 해설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이유가 그것이다. 그림도 그러하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여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의 울림을 말하는 것이다.
전시장 인터뷰에서 리포터가 갑자기 작품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의도에 대하여 질문을 했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카메라는 돌아가니 뭐라고 답변은 해야 겠는데 떠오르는 말들은 피상적인 것들뿐이다. 그래서
"그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답변 하였다. 그림을 설명하는 것은 작가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핵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여백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림을 그려 전시장에 걸어놓게 되면 감상은 각자 감상자의 몫이다. 작가의 의도는 다만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났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만의 경험과 감성이다. 따라서 시인들은 자신의 글이 그림으로 표현되었을 때 너무도 생소하게 표현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나는 아무런 미안함도 갖고 있지 않다. 시인의 글도 읽히게 되면 그 시는 이미 독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THE FACE-사색. 50F. 아크릴,캔버스. 2010 THE FACE- 기도. 50F. 아크릴,캔버스. 2010
사랑, 평화, 행복, 희망, 사색, 기도......., 모두 마음의 형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 형상을 그려보았다.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족은 오히려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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