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2)
새벽잠을 설친 탓에 비몽사몽으로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고 배웅하는둥 마는둥 다시 잠자리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꿈속인 것처럼 다시 뻐꾸기가 울었다.
착각이었나 하며 다시 돌아누우려는데 아직도 잠속에 반쯤 잠겨 있던 의식을 완전히 깨우며 뻐꾸기 전화가 울린다.
“ 여기 파출손 데요, 좀 나와 주셔야 겠습니다. ”
무슨 일이죠, 하고 물었지만 나와보면 안다면서 내 신분과 남편의 이름 주민등록 번호 그리고 주소를 사무적으로 여러 번 확인하고는, 고소 내용과 고소인 등은 파출소로 직접 와서 확인하라고 하였다.
경찰이나 파출소엔 구경 간 적도 없는 평범한 시민에게 경찰의 호출은 모든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면서 두려움에 휩싸이게 했다. 남편에게 연락하기 위해 수화기를 든 손이 사정없 한국전쟁이 끝나고 십년 뒤에 우리들은 태어났고 우리가 자랄때는 어딜가나 아이들 투성이였다. 도시에서도 농촌에서도 동네 골목에서도 학교에서도 넘쳐나는 아이들로 어쩔줄 몰라했다. 그 뿐아니라 고아원에도 버려진 아이들로 넘쳐났다. 그 곳에는 자매도 있었고 형제도 있었다. 한 학년이 십 학급씩 되는 우리 학교에서도 한 반에 서 너 명씩 고아애들이 존재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떼지어 등교하는 그들은 모두 비슷한 옷과 책가방을 가졌고 거의가 영양실조로 찌들다 못해 부황이 들어 배가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고아원 아이 특유의 옷차림과 이상한 냄새가 나는 그애들과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사실 그 당시의 경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어쩌면 부모있는 우리들보다 행색이 더 나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우울한 분위기와 어딘지 우리 앞에서 주눅이 든 태도로 인해서인지 그들이 입는 미제옷들은 고급스러워 보이기는 커녕 낡은 옷을 걸친 우리들보다 자연스럽지 못했다. 오히려 고아원 아이임을 증명하는 단체복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윤시내는 고아원 아이치고는 참 예쁘고 깔끔한 아이였다. 아니 우리들보다 더 피부가 희고 고왔으며 누구나 고아원 아이같지 않다고 했다. 그 애를 보면 동화책 속의 소공녀가 어쩌다 잠시 우리곁에 머무르고 있는 듯한 상상을 하게 했다. 우리보다 더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 탓에 시내는 선생님들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갖게 했다. 우리들도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도외시하는 다른 고아애들과는 다르게 시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들 무리 속에 끼워 주었다.
어느 날, 우리들은 시내를 따라 고아원에 가게 되었다. 옆집 친구 집에 놀러가 듯 그저 시내네 집을 놀러간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떠도는 소문처럼 그 애가 정말 고아원 원장님의 감춰진 딸인지 소공녀처럼 귀족의 숨겨 놓은 딸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풀고 싶었다. 그래서 난처해하는 시내를 며칠이나 졸라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고아원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다는데도 우리들을 데리고 가는 시내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읍내에서 오킬로쯤 걸어가자 아래 마을의 올망졸망한 초가와 함석지붕의 누추한 집들 사이를 지나 마을 언덕 위에 두드러지게 높고 큰, 학교처럼 검정색 콜타르 지붕과 나무판자 벽으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커다란 규모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곳은 우리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정겨운 구들의 온기나 맛있는 찌개 냄새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측백나무 울타리 안에는 커다란 마당도 있었고 안에는 우리들 집보다 훨씬 높은 천장과 세면실 식당 남녀로 구분된 두 개의 커다란 방이 있었다. 우리들은 아버지라고 불리는 뚱뚱한 원장님을 먼저 만나는 절차를 밟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린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절차들을 통해 시내가 속한 여자아이들 방으로 들어 갈 수 있었으니 입구에서부터 우리들은 주눅이 들게 되었다.
보모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방바닥에 책과 공책을 펴놓고 숙제를 하던 고아 애들은 우리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의 비밀스런 영역을 침범 당한 동물처럼 우리에게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모를 만큼 그들의 표정은 표독스러웠다. 그경은커녕 우리들에게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은 그들 때문에 우리들은 몸이뻣뻣하게 굳을 지경이었다. 학교에서 우리들에게 당한 수모와 박대를 거꾸로 갚아줄 좋은 기회를 만난 듯 그 애들은 숨김없이 우리에게 적대감을 표출했다. 우리는 마치 적진에 깊숙이 들어간 포로가 된 것 같았다. 우리는 두려움을 감추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은 야수의 세계에서 적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적인 원장 아버지와 냉랭한 표정의 보모를 만나면서 시내가 어떤 비밀도 갖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평범한 고아라는 사실이 저절로 느껴졌다. 시내는 그 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하나도 특별하지 않았다. 왼손잡이인 것을 빼고는.
아이들만큼 냉랭한 보모가 너희들 이제 가야지 할 때까지 포로처럼 자리에 붙박여 있던 우리들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우르르 밖으로 몰려 나왔다. 잰걸음으로 도망치 듯 빠져나온 우리들은 고아원에서 멀어질 때까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뒤에서 덮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각자 빠르게 뛰어 갔다. 그리고 이후 시내를 대상으로 돌던 모호한 풍문들은 사라졌다. 마치 시내 주변에서 피어나던 안개가 거두어지자 최면에서 깨어난 우리들은 새삼스레 시내가 고아원 아이임을 인식하는 식이었다. 그 뒤 시내와 전처럼 어울렸는지 어쩐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른 반이 되었고 몇 년 후에 부모가 찾아와서 시내를 데러갔다는 소문을 끝으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의 기억은 사실 뚜렷한 게 없다. 어릴 적 모든 기억은 가공과 사실성의 경계선이 모호해서 꿈을 꾼 이야기인지 사실이라는 원료에 상상이라는 가공의 초콜릿을 덧바른 것인지 확실한 실체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시내에 대한 기억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였는데, 오빠의 결혼식장에서 시내를 기억해낸 어릴 적 친구덕에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간신히 찾아낸 그림이었을 뿐이다.
결혼한 후 가끔씩 마주친 오빠는, 신혼의 신랑에게서 보이는 여유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만날 때마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표정뿐 아니라 행색도 어딘지 초췌해 보였다. 고모의 말씀에 그는 여전히 일류 기업체 선두에서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신부는 음식솜씨까지 빼어난 요즈음 보기 드문 상냥하고 아름다운 여자라는데 그는 자꾸 마르고 초췌해 보일 뿐이였다.
곧 이어진 나의 결혼으로 한동안 오빠 소식을 듣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의 친정 나들이때 들은 소식은 놀라웁게도 오빠가 사기 결혼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당사자가 내색하지 않아 아무 것도 몰랐던 고모네 부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까짓 사람이 중요하지 다른 무엇이 중요하냐며 모르는 체 했다고 했다. 이미 아이까지 생긴 마당에 여자로서의 역할, 아내로서의 역할,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그녀를 높이 치고 있었으니 결혼의 근본이 흔들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오빠는 그녀가 생색내며 부모님께 해드린 값비싼 예단과 가지고 온 아파트와 호화로운 혼수와 자동차등의 월부금을 갚느라, 그것도 부모님과 남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숨죽이며 갚아 나가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드러냈어도 거래처의 여직원이었던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 오빠로서는 그녀와 결혼을 하려 했을 텐데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거짓말을 했던 것인지. 거짓은 금방 들통나게 되어 있고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거짓이 드러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얼마나 피를 말리는 고통을 겪엇을까? 그녀의 거짓은 끝없이 드러났다. 이번엔 전문대 경영학과 졸업이라는 학력도 전수 여상이라는 변형된 고교 인정 학교를 나왔으며 오빠를 꼼짝없이 옭아맸다는 임신도 거짓임이 밝혀졌다고 했다. 오빠는 모든 걸 사랑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그녀를 용서하기로 했다고 한다. 오빠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가 보다. 그녀가 내건 미끼들 때문에 결혼하였다면 거짓이 드러난 마당에 말없이 그녀가 진 빚들을 갚느라 애쓰는 대신 이혼의 좋은 구실로 삼았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남들에게 축복 받고 시작한 결혼을 깨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고 그녀이 거짓이 사실 사는데 크게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부의 복합된 정 때문에 그녀의 거짓을 덮어주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곡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디에서나 당당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알아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숨을 죽이거나 어깨를 구부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그녀가 다행스러웠다. 자신의 거짓말 한번 때문에 평생 주눅이 들어 사는 모습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였다. 고모네를 비롯한 그녀의 시댁 친척들은 그녀가 갖고 있는 범상치 않은 외모가 그런 허물을 덮어주어도 될 만큼 값어치가 있다는 계싼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