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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방

[스크랩] 「안면도 바다」에 관하여 / 임보

[설명]

다음의 글은 시창작강좌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제15신에 수록된 내용입니만 시작 과정을 설명한 글이어서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운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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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바다」에 관하여  /  임보



로메다 님,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와 연관된 또 다른 이미지들이 발생하여
이미저리로 발전해 간다는 얘기를 전에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내 경험을 통해서 하나의 이미지가 어떻게 발전해 가는가를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작품을 먼저 읽어본 다음 얘기를 시작할까요?

    四月 봄 바다가
    몸살하는 걸
    잠든 섬
    갯가에서
    처음 보았지

    갯마루 언덕마다
    타는 진달래
    진달래 불꽃에 눈이 멀어
    쓰러져 혀로 걷는
    바달 보았지

    봄마다
    몸살하는
    매운 꽃바람
    그 바람이 어디서
    이는지를

    잠든 섬
    갯가에서
    보고
    왔었지. ―「안면도(安眠島) 바다」전문


로메다 님,
어떤 정황인지 상상이 되십니까?
별로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만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안면도(安眠島)라는 평화로운 이름을 가진 섬이 있지 않습니까?
서산 앞 서해안에 자리한 길다란 섬인데 지금은 연육교가 놓이고
개발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관광지로 이름을 얻었지요.
그러나 15, 6년 전만 해도 아주 한적한 섬이었습니다.
나는 그 '안면도(安眠島:편안하게 잠자는 섬)'라는 섬의 이름에 끌려
지도를 펴놓고 자주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그 섬을 찾아 차를 몰았습니다.
송림이 우거진 어느 한 해변에 닿았는데,
4월이었으니까 바다를 찾는 사람들도 없었고
모래사장에 부드럽고 잔잔한 파도가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동해와는 달리 서해의 바다 물결은 얼마나 부드럽습니까?
그 부드러운 물결의 이미지가 마치 '혀'처럼 느껴졌습니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혀로 계속 핥고 있는 바다,
물결이 혀라는 느낌이 들자 바다가 엎드려 있다는 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쓰러진 바다'라는 두 번째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왜 바다가 쓰러졌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때 갯가의 언덕에는 진달래꽃이 불붙듯이 환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옳지, 저 꽃을 향해 달려가다가 그 꽃이 너무 눈부셔 그만 쓰려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메다 님, 어떻습니까? 내 상상력이 그럴 듯합니까?
그런데 쓰러진 바다가 멈추지 않고 계속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혀로 걷는 바다'라는 세 번째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한 발견에 도달합니다.
진달래꽃 해안과 움직이는 바다 사이에 바람이 일어난다고
그 바람이 바로 '꽃샘바람'이라고―.
해마다 이른봄 꽃필 무렵 불어오는 차가운 꽃샘바람이
어디서 오는 지를 몰랐는데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로메다 님,
내 얘기를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바다 물결의 리듬을 생각하면서 7·5조의 율격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각 연의 분량은 자유스럽게 배치했습니다.
제1연은 두 개의 7·5
제2연은 세 개의 7·5
제3연은 다시 두 개의 7·5
마지막 제4연은 한 개의 7·5입니다.
각 연의 행의 배열도 7·5의 율격과는 상관없이 자유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물결들에 어울리게 비교적 짧게 배열했습니다.
마지막 연은 분량이 적으니까 행의 길이들이 더욱 짧게 되었습니다.
작품 전제의 구성은 기승전결의 4단 구성입니다.

로메다 님,
지난 몇 차례에 걸쳐 작품의 전개 유형들에 관해 말씀 드렸습니다만
내가 제시한 것들은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도식적인 전개 구조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지의 발전을 좇아 자연스럽게 펼쳐나가십시오.
그러면서 어떤 형태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가장 적절한가를
모색하여 결정하면 됩니다.
이것이 정형시와는 다른 자유시의 특권입니다.
정형시는 지켜야 할 이미 정해진 틀이 있지만
자유시는 내 마음대로 작품의 형태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들어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에 가장 합당한 형식을 찾아내야 하는 책임이 따르니까요.
그래서 자유시는 작품마다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유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유시가 정형시보다 쉽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입니다.
또 부담스러운 얘기를 했나요?
그렇다면 이것도 쉽게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따라 그냥 자연스럽게 전개해 가면 된다고―.
그렇게 많이 쓰다보면 언젠가는 자연히 최선의 방법이 터득될 것입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임보.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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