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감성 키워주자" 교장·교감이 직접 글·그림 지도
市주최 대회에서 전교생 전원 입상… 작품집 펴내기도
입력 : 2008.07.09 03:34 / 수정 : 2008.07.09 07:56
- "글 쓰는 게 좋아졌어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어유지리에 있는 어유중학교 다슬이(여·1년)는 올해 꿈이 생겼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지난 5월엔 시(市)가 주최한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생전 처음 '상'도 탔다.
3학년 혜빈이(여)가 최근 갖게 된 꿈은 '심리치료사'. 그림이나 글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다독여주고 싶다. 미술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는 혜빈이도 최근 '파주시 초·중·고 미술실기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전교생이 39명에 불과한 시골 학교가 글과 그림으로 빛나고 있다. 뭐든 심드렁하기만 했던 아이들이 저마다 꿈을 갖게 됐다. 작은 학교가 이렇게 확 바뀐 건 지난 3월 김운상(56) 교장이 부임해 '문화 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 어유중학교 김성로 교감이 학생들과 함께‘어유지의 꿈’작품집을 펼쳐보고 있다. 책 표지에는 화가인 김 교감의‘5월’이라는 작품이 실렸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han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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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마음을 글쓰기로
시인이기도 한 김 교장은 어유중에 오자마자 '문화'와는 담 쌓고 지내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편모(偏母)·편부(偏父) 가정이나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80%가 넘고, 학원은커녕 영화 한편 보는 일이 '연례 행사'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미술과 음악 등 예체능 과목은 전담 교사가 없어 인근 학교 교사로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받는 '순회 교육'이 전부였다. 김 교장은 "어린 시절 꼭 필요한 감성을 키워주기 위해" 문화 교육에 나섰다. 제일 먼저 '주말 작문 과제'부터 냈다. '나의 가족', '나의 꿈', '가장 슬펐던 기억은' 같이 간단한 주제를 주고 글을 쓰게 했다. 처음엔 한두 줄 쓰기도 힘겨워했던 아이들은 점차 A4용지 한 장을 빼곡히 채우기 시작했다. 행간 구분 없는 산문만 써오던 아이들은 저절로 '시'와 '만화'로 모양을 바꿔 제출하기도 했다.
"억눌려 있던 마음속 말들을 글로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쌓여가는 아이들의 작품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개인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졸업 때 나눠줄 생각입니다."
김 교장의 열성에 발맞춰, 화가인 김성로(51) 교감은 직접 '방과후 미술 수업'을 열었다. 평소 그림을 배우고 싶었던 아이들 10명을 모아 붓 잡고 물감 섞는 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림 도구는 학교 운영비에서 마련했다. 글과 그림을 시작한 지 석 달 후, 어유지리 사상 처음으로 낭보(朗報)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파주예술제 그림 부문에 나간 학생들이 최우수상을 비롯해 전원 상을 받은 것이다. 또 시(市) 글쓰기 대회에서는 전교생 39명 모두 상을 타기도 했다.
◆시골 밤의 어유 문학제
어유중학교의 진짜 '큰일'은 지난 5월 17일 일어났다. 아이들이 지은 시(詩)가 전국에서 모인 시인들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됐던 것이다. 김 교장이 "문화의 텃밭을 가꾸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영상문학협회 시인 40명을 초청해 연 '어유문학제'에서다. 아이들은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전문 시인의 작품을 감상했다. 손소운 시인은 '서른아홉 물고기를 위한 노래'라는 시를, 김영준 시인은 '서른 아홉 그루 어유 송(松)에게'라는 시를 어유중 아이들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문학제에 참석한 한국문인협회 시 분과 김송배 회장은 "벽지(僻地) 학교에서 전국의 시인을 모아 문학제를 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시와 그림을 접해온 아이들의 눈이 유달리 반짝였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문학제는 끝났지만 파주시 곳곳에서 문학제에 전시됐던 아이들의 작품을 '모셔가고' 있다. 적성종합고등학교는 축제 기간 동안 어유중 작품을 전시했고, 문산청소년문화의집 길목에도 작품이 걸렸다.
이달 초엔 문학제에 제출했던 글을 묶은 '어유지의 꿈'이라는 작품집이 발간됐다. 예산은 교사들이 발품을 팔아 300만원을 후원 받았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과 글이 실린 책이 신기하기만 하다.
"영어나 수학을 배우는 것도 좋지요. 하지만 이 시기에 문학과 미술로 깨친 감성은 평생 지속되는 토양입니다. 시골 아이들의 거칠지만 살아있는 감성을 꾸준히 길러주고 싶습니다."(김운상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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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7일 파주시 적성면 어유지리 어유중학교에서 전국에서 모인 시인 40명이 학생들과 함께 '어유문학제'를 열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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