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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신문, 잡지소개(news)

시와 산문 2010 겨울호(나의 길 화업)

표지화/김성로

 

 

 

 

 

 

 

 

 

그림이야기 

 

나의 길 화업(畵業)  / 솔뫼 김성로

 

 

1. 꿈

 

 

    [소년], 70×70cm, 한지 위에 아크릴. 2003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난 커서 화가가 될 거야."

  "............."

  "넌 무엇을 하고 싶니?"

  "난, 엿장수가 될 테야!"

 

  20여년이 흐른 뒤 고향을 찾았을 때, 친구는 커다란 고물상을 하고 있었다. 소원대로 엿장수를 하다가 큰 사업으로 성공을 거두어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가난한 화가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장난 같던 말 한마디가 인생행로의 나침판이 되었다.

  

2. 그리는 재미

 [가을이미지], 50F, 캔버스에 유화. 1978

 

  국민학교 1학년. 선생님께서 칠판에 괄호에 들어갈 말을 아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모두 손을 들기에 나도 들었는데, 하필이면 나를 지목하셨다. 물론 나는 글자를 몰랐다. 키가 작아 손이 닿지 않는다고 하자 선생님께서 번쩍 들어 올려 칠판 앞에 세우셨다. 그래서 괄호 속에 선생님 얼굴을 그렸고 그 대가로 모질게 엉덩이를 맞았다.

그 후 나는 빈 종이만 있으면 낙서를 해댔다. 주로 만화 그림이었지만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손을 다쳤을 때도 어린 마음에 혹시 그림을 그리지 못할까 봐 엄지와 검지를 먼저 꼬무락거렸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초등학교 6년간 교실 뒤편 게시판에 내 그림이 붙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5학년 때 미술 실기대회에 참가를 했었는데 10분도 되지 않아 완성한 작품을 제출하니 선생님께서 어이없어하며 물어보셨다. 

 

  "이게 뭐니? 무얼 그린거야?"

"....... 바람이요."

 

도화지에 여러 가지 색깔로 구불구불한 선만 빼곡히 그려 넣은 작품이었다. 나는 멋진 그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생님은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실기대회는 당연히 떨어졌다. 여러 날 속이 상했다. 그 후로 나는 세상과 타협하기로 했다. 

 

3. 꿈을 좇아

 

[바람이고 싶다] 45×45cm, 한지 위에 수묵, 2007

 

 그림은 그려야겠는데 너무 가난했다. 미술학원에 무작정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께서 돈을 내라고 하기에 청소며 뒷일을 하겠다며 사정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한 달 뒤에는 선생님을 도와 화실 친구들을 가르치며 남보다 더 열심히 그렸다. 그리고 원하는 미술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주머니를 탈탈 털어 선생님께 선물한 것은 겨우 맥주 두 병과 마른안주 하나가 전부였다.  기분 좋게 껄껄 웃으시던 선생님께서 최초로 나를 인정해 주신 분이었다. 

 

4. 사실주의

 

[내소사에서] 70*70cm, 한지위에 아크릴. 2000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화두였던 대학 시절. 시각은 초점을 맞춘 곳만 하나로 보이고 그 주위는 두 개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리고 나니 마치 입체파나 미래파의 그림처럼 보였다. 50호 두 점을 그려 선배에게 보여주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고 핀잔을 하였다. 결국, 교수님께는 보여 드리지도 못하고 그 화풍은 묻어 두었다. 학점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30여 년이 흐른 후 어떤 미술 잡지에서 젊은 작가가 유사한 화풍으로 그린 것을 보았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리얼리즘은 사실을 그대로 그린다는 의미다. 눈으로 보이는 대상을 사진처럼 그린다는 의미와 현실을 거짓 없이 그린다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인간 내면의 리얼리즘을 조명하기 위하여 화장실에 커다란 종이를 붙이고 펜과 물감을 마련해 두었었다. 숨겨진 본능의 진실성과 낙서 과정에서 보이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공간구성을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그 작업은 실패하였다. 그 다음 날 철거당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주의, 경고와 함께.........  

 

5. 추상화 

 

[흔적] 90×90cm, 혼합재료. 1985

  

추상화 또는 비구상화라고 불리는 작업은 구체적인 형상이 없이 조형요소만으로 표현하는 그림이다. 이 작업에는 구체적인 대상을 그릴 필요가 없이 작가의 감성이나 사유를 그대로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온갖 표현 수단과 방법이 다양하게 실험되어 졌다. 그러나 솔직히 일반 대중과 화가는 추상화로 말미암아 더욱 멀어졌다. 매번 작품 앞에서 그림을 설명해야 했으며, 그 설명이 엉터리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제법 긴 세월 동안 추상작업을 하였으나 소통이 없는 작업에 회의가 들었다.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로 출발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6. 일상과 ‘나’의 표현

 

[일상] 45×45cm, 한지 위에 아크릴. 2001

 

 

무엇을 표현해야 할까? 떠오르는 이미지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일상의 표현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내 주변의 상황과 그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산다는 건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것들이 때론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그림은 자기 삶의 표현이다. 모든 존재가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다면 나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탄생되는 우주의 흐름에서 나란 존재의 가치는 무엇일까?

  

7. ‘나’를 찾아서

 

 [자연과 나] 70×70cm, 한지 위에 아크릴. 2000 

 

 

   

          자연과 나

 

            바람이 멎고

            나뭇가지도 울음을 멈추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검은

            나무들만 주위를 감싸고 있다

            갑자기 모든 풍경이 정지되었다

            나는 산이 되었다

            나는 나무가 되었다

            나는 바람이 되었다

            자연과 나 홀로

            서로 마주 보고 있다.(졸시전문)

 

8. 만다라(내 속의 나)

내 속에 또 하나의 내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놈은 누굴까?

밝은 듯, 어두운 듯 정체가 모호한데, 마음을 모아 자세히 보려고 하면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바른 놈도 아니고, 나쁜 놈도 아니다. 항상 빛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어두운 것도 아니다. 집착하여 비틀려질 때는 존재가 흐려지고, 환희에 젖을 때도 내 속의 나는 존재가 약해진다. 슬프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아름다움이나 감동을 할 때, 잠자리에 눕거나, 사색에 잠길 때면, 마음속에서 일어나서 우두커니 지켜보는 놈. 내 속의 나는 단지 나 하나가 아니었다.  

 

 

   [내 속의 나] 145×145cm, 한지 위에 아크릴. 2009 

 

 

 

         마음

 

            마음은 물이랍니다

            하늘도, 흰 구름도, 앞산도 비추어

            잔잔한 듯싶어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답니다

            물에 비친 그림자는

            항상 그대로이지만

            그 마음은 이미 저 멀리 흘러가 버렸답니다

            나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답니다.(졸시전문) 

 

 

9. 얼굴(FACE)

 

[FACE-평화] 캔버스 위에 아크릴. 50F. 2010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고 물어보았다.  

"어떠냐?"

"................" 

한참이나 말이 없다.

  이런 작업에 취한 후 벌써 몇 달째 새벽 1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고 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바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아무런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내와 별다른 말이 없어진 지도 제법 되는 듯하다. 매일 형광등 아래에서 긴 시간 작업을 하다 보니 이젠 눈도 침침해지고, 허리도 결리기 시작한다. 가끔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을까?' 하고 자문하기도 한다. 투자하는 노력에 비하면 그 대가는 참으로 하잘 것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환쟁이로서 아무도 표현하지 못한 세계를 그려 보고 싶었다. 욕심을 내자면 그림으로 삶의 궁극적인 결정체를 표현하고 싶었다. 삶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감정은 매 순간 변하고, 사유는 감정의 그림자이며, 때로는 그럴듯한 포장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일까? 한 번뿐인 삶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러 사람들이 심오한 말을 하고 글로 남겼지만, 그것은 그들의 삶일 뿐이다.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있는 나의 길을 걸어야 했다. 

 점점 내면으로 파고들었지만, 그것은 양파껍질과 같아서 아무런 실체도 잡아낼 수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단지 여러 감정의 편린들 뿐.

 

“생각이 많이 복잡해 보이네."

"그런가? 나는 단순해 보이는데........."

 

일상에서 감정의 흐름은 일률적이지도 않고, 통제되는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웃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해 보이거나 우발적인 것들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전혀 이유 없이 급반전을 보이기도 한다. 그 흐름의 저변에 깔린 것.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는 살아남기 위하여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유와 감정의 흐름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10. 예술과 현실

작가가 작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동반된다. 작품제작과 전시, 홍보의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혼신의 노력으로 작품을 제작해도 판매가 되지 않으면 그 작업에 들인 노력과 비용은 고스란히 작가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작가는 예술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작가가 상품성을 떠나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고집하는 것은 그 작업이 인생을 걸고 추구할 만큼 매력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아무도 표현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흥분과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그것은 마치 구도자가 수도하는 것과 유사하다. 한 번뿐인 삶에서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송학(松鶴)의 뜻] 한지 위에 아크릴. 120×70cm. 2010

 

송학의 뜻

 

백학이 날아간 자리에

청량한 학 울음소리 남아

푸른 솔밭이 더욱 싱그럽다

 

절벽 위 노송에 앉은 백학

강물에 그림자 드리우건만

탁류에 사는 물고기에겐

빛을 가릴 그늘만 소중하지

청아한 그 소리가 들리지 않네

 

 

노송은 천 년을 살고

백학은 수시로 찾아오니

맑다가 흐린 강물이야

송학(松鶴)의 뜻과는 무관하다

 

교교한 달빛이

천지사방을 비취니

노 젓는 뱃사공이 눈을 들어

맑은 풍광을 감상하네. (졸시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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