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활황, 그 이면에 놓인 그림자
글ㅣ홍경한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2007년은 단군 이래 최대의 미술호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자본이 미술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통업체들은 전년 대비 300%가까운 성장이라는 가시적인 지표를 그렸으며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작품들이 수십 점씩 판매되며 미술품시장이 호황임을 증명했다. 느닷없는 돈바람이 불자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 두개에 불과하던 경매사들이 1~2년 사이에 여기저기에 둥지를 틀며 20여개로 늘어났으며 국내 대표적인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 등의 실적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 현대미술의 인기가 치솟고 시중 부동자금이 미술시장으로 몰리면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역시 돈이 된다 싶자 갤러리들이 전국을 무대로 우후죽순 들어섰고 심지어 그림에 대해 잘 모르거나 별 관심조차 없던 국민들마저 땅이나 집을 사지는 않더라도 그림에는 투자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제로 미술품시장에 돈이 쏟아지고 있음을 느낀(보다 구체적으로는 '돈이 된다고 느낀') 구매자들은 너도 나도 각종 아트페어와 국내외 경매장, 화랑, 아트페어 등으로 몰려들었다. 경매장에는 매번 수백 명에 달하는 낙찰희망자들이 운집했으며 출품된 작품들은 역대 기록들을 갱신했다. 미술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온라인을 무대로 한 미술품투자모임이나 미술품투자카페 등을 수없이 생성시키며 미술품이 새로운 투자대상으로서 뜨거운 각광을 받았음을 증명했다. 이뿐 아니라 국내미술시장이 수천 억 원에 달할 만큼 비대해지자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하나 둘씩 국내진출을 가시화 했고 국내 갤러리들은 반대로 국내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노크하기도 했다. 여하튼 2007년 미술시장은 그야말로 자본이 득세한 미술춘추전국시대, 21세기 미술자본주의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미술작품이 잘 팔리고 미술시장이 흥하면 이는 분명 반가운 일이다. 열악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미술계에 신선한 피를 돌게하고 창작자들에겐 경제적으로 작은 혜택이라도 돌아갈 수 있으니 어떤 면에선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꿈만 같던 미술의 대중화가 금방이라도 실현될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하고 문화향유의 다양성과 충족권의 획득이 이뤄질 것만 같은 기대는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긍정성을 수반함이 명확하다.
하지만 2007년을 몇일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볼 때 미술시장 활황이 가져온 결과들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몸집은 지나치게 거대해진 반면 질적 성장은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일부 인기 작가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감으로써 고질적인 문제였던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노골화 되었다. 일부 작가들은 돈 만드는 데 적격인 작품에만 심혈을 쏟는 대신 철학성이 부재한 그림들을 양산했으며 잘 팔리는 그림에 치중하도록 유무형으로 종용한 화랑들이 득세하면서 신진작가발굴이라는 화랑 본연의 임무는 희석되고 말았다. 붓을 놓고 유통에 뛰어든 작가들, 돈이 된다면 철저한 감정없이 무엇이든 내다 판 경매사 덕분에 위작 사건이 줄을 이었고 위작 파동은 미술작품의 공신력의 훼손을 불러 왔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자본에 의한 미술계의 완전한 잠식이 이어지자 창작의 모태가 되는 미술의 순수성은 더 이상 떨어질 곳 없을 만큼 깊은 나락에서 헤매야 했고 특히 투자가 아닌 투기성 자본이 미술계에 유입되면서 일각에선 미술계를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규정하는 안타까운 시각마저 돌출시키고 말았다.
미술시장 호황이 빚어낸 강렬한 빛은 그 이면에 놓인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물론 돈과 미술이 불가분의 관계임은 사실이다. 또한 현대미술에서 돈은 화가의 가치를 대변하는 척도 중 하나임을 모르진 않는다. 피카소를 밀었던 볼라드와 파리의 아방가르드 현대미술을 사모으던 거트루드 스타인, 영국 yBa를 세계적인 작가군으로 만들어 놓은 찰스 사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지원했던 교황 줄리어스 2세나 메디치가가 없었더라면 대작을 줄줄이 생산하는 게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다양한 세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왜곡되어 있고 예술을 부흥시키기 위한 자본의 지원이 아닌 투기자본으로 차익을 챙기기 위한 예술의 쓰임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를 지닌다. "작가들이 아무 돈 걱정 없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가 마치 "돈이 되는 그림에 작가들이 전념했으면 좋겠다"로 들린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소 아쉬운 것은 누가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문제 가득한 시장임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담론의 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널이나 지식인들, 소위 전문가들이 나서서 강한 비판의식을 담보로 한 발언들을 내놓아야 하는데 변변하지 못하다. 그마나 일부에서 현재 미술시장의 난제에 대한 토론을 벌이며 이를 보도하고는 있으나 미약한 수준이어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기는 어렵다.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매우 화려했던 2007년 미술시장과 미술계. 그러나 어떤 면에선 자본의 족쇄를 더욱 단단히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지금이야 말로 진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미술이 경제를 좆다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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