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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어유문학제

[스크랩] 어유지리 문학기행 속에서(수필)

어유지리 문학 기행 속에서

 

 

집 천장에 눌리고 답답함에 눌려있던 나를 버리고 내 아이와 조카를 데리고

작은 여행을 떠나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굳이 원망 하릴없는 것이 실비이던, 장대비이던

개의치 않고 떠나보고 싶은 간절함이 더욱 컸기에, 그리고 왠지 모를 궁금함이

머릿속에 꽉 조인 느낌이 들어 “어유지리 문학 기행.”에

몸과 마음을 내심 의탁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모임장소에서의 낯선 얼굴에서 가느다란 정겨움이 흘러나온다.

어색함을 내리고 반가운 인사로 동질감을 확인하는 순간,

맞잡은 손이 따스하다는 거, 새삼 다시 느낄 필요가 있을까, 해도

구름 사이로 간간이 비춘 햇살이 설렘을 더욱 부추긴다.

 

도도하던 한강이 장마철 황토물에 옷이 젖은 채 내달리고,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는 봉고차 안의 밀착된 좌석이 새로운 인연의 자리를

더욱 좁혀놓는 것일까?

모두가 이방인이었을 쑥스러움 대신 자기 자신을 알리는 명함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진다.

“아뿔싸!” 이런, 낭패가 쯧쯧! 미처 챙기지 명함 대신 나는 난처함을 내놓아야 했다.

 

하긴 환하게 드러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어 쓱- 하니 내놓겠는가.

그저 머쓱한 웃음으로 대신 할 밖에... ,

임진강을 지나 한참을 달리자 차 창가 멀리 보이는 감악산이 넉넉한 웃음을 보이며

반갑게 맞이한다.

곧이어 눈에 띈 학교건물 운동장이 넓은 가슴을 드러내고, 아련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잠시 눈앞을 스쳐간다.

꿈을 만들고 키웠던 기억이 어언 수십 해 문학 기행이라는 빌미는

흔적의 땅껍질을 벗겨 추억을 드러내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내 아이와 조카를 대동한 것이 무척 잘 되었군,’ 하는 자찬 속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행들 틈에 섞여 임진강변 황포돛배 선착장에 도착했다.

잠잠히 흐르던 강물이 우기에 걸맞게 고요함을 접고 고함을 치며 달려든다.

아직은 망각의 강을 건너기엔 나의 삶이 역량부족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행히 황토색 강둑 위로 어슬렁거리던 사공은 보이질 않는다.

아쉬움 반 두려움 반속에 질척한 흙길을 가르며 내달리는데도

승용차의 움직임이 왠지 모르게 가뿐하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물 위를 가르며 쏜살같은 몸놀림으로 물 비행을 하는 소금쟁이 발처럼

모든 일행의 표정이 밝다.

즐거움이 충만해서인지 아니면 그들도 설렘으로 들떠있는 것인지 몰라도

경순 왕릉에 도착하자 더욱 세찬 빗줄기가 더욱 세차게 쏟아진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말없이 흐르는 강물에 흘러간 역사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젊은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메모장까지 뒤적거렸다

더는 무슨 말이 필요 있으랴,

 

시제 / 경순 왕릉에 올라

 

굽이치는 강물에 깎여나간 산허리는

군살 빠진 작부의 허리 인가

아니면 우기에 편승한 잃어버린 왕조의 서글픈 눈물인가.

다정도 없어라

설렘도 없어라

잠잠히 흐르는 강물 위로 부토된 영혼은 떠나질 못하네.

숨겨진 책략 속에 멋모르고 시집 온 황후의 고왔던 손길이,

발을 씻겨주던 시녀의 손길이,

누렇게 변한 서러운 눈물을 어이 닦을 수 있으랴.

쇠락한 왕조의 황금빛은 강 위를 떠도는 서녘 안개 같음이니

국운을 다한 천 년 사직을 땅에 묻고

홍루를 쏟아내는 비운의 제왕이여,

세월의 무게에 눌린 안식하지 못하는 영혼이여,

한 때의 영화로움이란 덧없이부서져 내리는 기왓장 같거늘

드리워진 먹구름에

오열을 쏟는 비운의 제왕 앞엔 풀잎만 무성하네.

 

그렇게 그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여독을 풀고 저녁식사 후

조촐한 여흥의 시간을 가져본다.

간간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운치를 더욱 돋우어준다는 생각, 참으로 오래간만에 가져본다.

각자에게 반강제로 할당된? 일행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법이라야

졸 시 한 편과 음정, 박자가 엉망인 노래 한 곡뿐이다.

그래도 박수소리가 큰 것을 보면 동질감이 좋기는 좋은 것인가 보다.

적당한 술기운이 사람을 용감하게 변신시킨다는 거, 새삼 되짚어볼 필요 있을까 몰라도

여하튼 그날 밤의 여흥은 쉽사리 잊힐 것 같지는 않은 기억이 되었다.

 

저마다 솜씨를 뽐내고 일행의 흥겨운 화담이 남실대는 밤이니

불나방은 곁눈질 속에 부지런히 머리 위를 날고, 달도 별도 구름 뒤에서 쭈뼛쭈뼛 거리고,

풀벌레조차 비를 마다할까 하는 정겨운 밤에

낭송하는 일행들의 글에서 풍기는 시향에, 운율에 흥겨운 춤사위에 즐거움이 쌓이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닫혔던 방 창문을 활짝 열고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가슴을 열어주는,

마치 그런 느낌을 받은 밤에 문학 기행이 전해준 의미와 여흥이 곁들여진 자유로움,

아!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희열인가,

 

나 스스로 따스한 가슴을 지니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을 되짚어본 문학 기행의 날이다.

실로 잊지 못할 추억 한 줄이 가슴에 선명하게 그어지기도 한 날에.

 

 

                                                                              청명 김 태수

( 작년,2008년) 처음, 어유지리 문학기행 시 아들과 조카를 대동하고 느낀 바를

써 놓았던 글입니다.

탈고 까지는 아니어도. 여유지문학제 후유증이 남아 올려놓습니다. 2009515.

 

 

출처 : 한국영상문학협회
글쓴이 : 淸明 / 金泰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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