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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어유문학제

[스크랩] 어유문학제를 다녀와서

별, 사람이 되어가다

 

                               너울 윤준한

 

한 가닥 꿈을 찾기 위해 기나긴 고통의 시간과 사투를 벌이다가 습관처럼

그렇게 하얀 밤을 맞이했다. 이미 육체는 만성이 되었는지 밤을 새운 피곤함도,

꿈을 찾기 위해 벌인 산고(産苦)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먼 나라이야기인 듯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고 보면 몸과 마음은 가깝고도 먼 사이인 듯 싶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언제부턴가 해가 바뀌고, 달이 넘어가 5월이 오면 어느

한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에 몇 날 며칠을 지새워도 곤함은 사라지고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들뜬 마음에 자꾸 시계바늘을 바라보며 묘한

흥분에 빠져든다.

2년 전 아주 커다란 두려움과 아주 작은 희망을 소중히 담아 정성껏 묘목을

심었다. 그 묘목을 심은 지 올해로 세 해를 맞이하니 세월의 흐름이 이리도

빠른 것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어린 묘목들이 제법 뿌리를 내리고

모진 세파를 잘 견디어 내리라 여기며, 작은 묘목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모든 것을 다 잊고 새벽바람을 활기차게 가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제 3회 어유문학제

' 들은 귀는 천년이요, 말한 입은 사흘이다 '

내겐 어린 학생들에게 문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자격도, 또 그 자리에

설 자격도 없다. 하물며 그들에게 문학제란 미명아래 시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말을 해 주고 보여 준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10대, 20, 30대에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먼저 경험하고

살아왔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론 따사로운 햇살의 소중함도,

때론 모진 비바람을 맞아 부딪히며 이겨내야 하는 고통도, 때론 절망의 늪에 빠져

쓰러질 수 있는 순간이 그들 앞에 올 수 있기에,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길 바라는 노파심 때문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사흘이

채 가기도 전에 모든 것을 잊고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고 지나갈 수 있지만,

내 말을 들은 삼십 여명의 어린 학생들 중에 어느 누군가는 이러한 문학제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첫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는 이제 막 싹을 틔우는

새싹을 위해 지금의 내 모습처럼 이러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 설렘과 기쁨은 어떤 말로도 표현을 할 수 없었다.

 

교정에 첫 발을 내딛자 시야에 펼쳐진 모습.

양 옆으로 일제히 도열해 있는 아름다운 시들의 모습이 마치 칙칙하고 메마른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이제 막 환하고 꿈이 넘치는 나라로 들어선 나를 위해

환영의 손짓을 하는 듯 그렇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니, 그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 저들과 먼지가 풀풀 나는

흙에서 뛰고, 뒹굴고 싶은 마음이 가슴 저 편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나도 한때는 저 아이들처럼 티 없는 모습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둡고 칙칙한 모습으로 변해 있으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들뜬 마음을 잠시 접어둔 채 학생들의 솔직 담백한 마음이 담긴 시화작품들을

감상하고, 시인들과 학생들의 낭송 릴레이와 그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연주 실력을 볼 수 있었다. 단단한 호두 껍데기를 깨고 나온 호두알처럼

저 아이들은 가슴 저 밑바닥에 묻혀 잠시 잊고 있던 감성의 알맹이를

하나 둘 꺼내 놓은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감성은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다. 때론 과중한 학업에 치이고, 때론 수없이 많은 갈등에 치이고,

때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혹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마주쳐도

저 아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감성의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면 절망에 빠져

지쳐 쓰러질 일은 없을 것이요, 메마른 콘크리트 인간이 아닌 풋풋한 흙냄새가

피어나는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채워 가는 것이다. ' 라고 소설가 이문열이 말했다.

어쩌면 오늘 이 순간도 저들에게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의 한 조각일 수도 있지만,

먼 훗날 저들의 기억 한 편에는 분명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을 것이고,

그 추억이 살아가는데 작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칙칙하고 단단한 콘크리트형 인간이 아니라, 어느 한 구석이라도 따스함이 있는

그래서 누구나 쉽게 다가서고 융화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완벽한 음을 재생하는 CD나 MP3의 음질보다는 가끔은

음이 튀고 매끄럽지 못할지라도 자연스러운 LP판의 음질이 더 정감 있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듯이, 이성으로 무장하기보다는 감성이 흐르는 사람이 더

많이 있길 바란다. 이성이 내 정신을 잠식하면 눈물이 흐르지 않고, 감성이

내 마음을 움직이면 작은 것 하나에도 눈물을 흘리듯이 진정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정말로 행복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사랑은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랑을 받을 줄 알듯이, 문학제를 통해 하나 둘

꺼낸 감성의 알맹이를 탁류가 만연한 이 세상에 널리 퍼지길 소원해 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그러하기에 아픔도

느끼는 것이다. 그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어유중학교에서

자라고 있기에 기쁨이 넘칠 뿐이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본다.

어둠이 짙을수록 그 존재감이 더욱 빛나는 별들이 어느 순간 이 세상으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굳게 다져진 사람으로.....

 

끝으로 문학제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고생을 하신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스스로 감성의 알맹이를 꺼내 보여준 학생들, 또한 원로 시인들과

한국영상문학협회 회원들, 화가분들 모두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출처 : 한국영상문학협회
글쓴이 : 너울 / 윤준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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