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로 [보광사] 70*70cm, 한지위에 아크릴. 2004
가을 부처 / 이만섭
용문사 가는 길
십리 밖까지 마중나온 은행나무
잎마다 계절을 삭혀내고
뼈마디조차 노랗게 익어났다
가을 햇빛 속에서 가을 바람 속에서
스스로 익혀낸 몸이라면
길가에 삐쩍 마른 들풀인들 무엇이 다를까,
순간조차 가르고 갈라
수태하듯 견뎌온 세월
제 몸 앓고 나서
털끝 하나라도 가을로 세운 것이라면
찬바람 헤집고 날아와
산사나무 끝에 앉은 곤줄박이인들,
담장 가에 생의 열매를 배양하지 못한 채
쓸쓸히 시들어간 돌배나무인들,
그 어느 것이라 해도
벼리의 몸 벗고 자생을 얻었으면
그렇게 계절을 건너왔으면
가부좌를 틀지 않았어도
가을은 다 부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