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로 [ 달이 웃는다] 45*45cm, 한지위에 아크릴. 2001
우물 속으로 / 강인한
우물 속으로 내려가 보았네
가물고 가문 그 해 여름의 복판에서
삼남의 논밭이 타들어가고
머리칼을 세우던 두려움도 마르고
깊은 우물도 말라가고 있었네
감나무에 땡감이 퍼렇게 멍든 날
썩은 동아줄도 없이
맨발로 내려갔네
비죽거리는 우물벽돌이
내 손과 발을 더듬더듬 받아주고
게걸음으로 게걸음으로 버티며
어둠 속으로 내려갔네
겨울 밤에 들여다본 저 깊은 곳에는
처용의 얼굴 같은 것 처용의 웃음 같은 것
하얗게 일렁이더니
댓 장 깊이의 우물 바닥에
마침내 맨발로 내려섰을 때
구렁이 샘물이 눈을 뜨고 배시시
발등을 차갑게 어루만져 주었네
죽은 모래와
사금파리와 칫솔이랑 건져서
한 두레박씩 퍼 올려보내는
저 허망한 우물 밖에는
내가 벗어 놓은
스무 살의 여름 해가 소금으로 타고 있었네.
- 시집 '푸른 심연'
강인한 시인
글 출처 : http://cafe.daum.net/poemory/FwJa/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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