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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미술교육

현대미술의 문화산업적 역할

(2007-04-19 14:42:59)
최병식
http://www.spacechoi.com
현대미술의 문화산업적 역할
현대미술의 문화산업적 역할

경희대학교 현대미술연구소 주최 세미나  주제발표 1999.6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1. 현대사회와 미술구조의 대변혁


  20 세기말의 세계적인 구도는 이미 미소간의 긴장을 비롯한 동서간의 긴장이 완화되고 헌팅턴이 말하고 있듯이 문명의 전쟁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세계도처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 발칸의 코소보사태나 페르샤만전쟁, 티벳의 분리운동과 인도의 끊이지 않는 종교적인 분쟁은 종교와 사회적인 관습이 갖는 상호간의 충돌과 인종간의 분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제는 모든 군사적인 긴장이 차원을 달리하고 문명적인 차원으로 진입하여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정보화의 혁명을 기점으로 하여 대중적인 매체의 힘이 급속히 증강되고 지금까지의 패턴과는 아예 근본적인 구조를 달리하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여 정치적, 사회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우주로 확대되어 가는 통신혁명의 눈부신 변혁과 쌍방향 전파매체까지 예고하고 있는 TV의 혁명, 컴퓨터의 보급으로 인한 사이버 공간의 가능성은 모든 문화적 매체로서 과거의 제한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고유한 영역을 이루어온 문화권과 국가적인 개념이 붕괴되고 절대적인 신화로만 존재해온 모든 진리와 교과서들이 그 권위와 형태를 도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서 이른바 단일체 의식(monolithic consciousness)을 야기하면서 다양한 개인주의를 탄생시키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개인적인 취향에 기준한 엘리트계층의 확대와 대중의 인기주의가 팽창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제 대중을 향한 무기는 여전히 경제적인 요소가 관건이 되어있지만 이제는 그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인 차원의 무기를 개발해야만 한다는 것이 모든 나라들의 관심사이다. 영화산업이 기간산업을 훨씬 뛰어넘는 신화적인 수익이나 최근 에니메이션의 인기가 이를 반영하고 있으며, 단순히 실용적인 전자제품이나 자동차가 아닌 어떠한 문화적인 성격을 지닌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인가에 보다 집중된 관심을 보인다.

  위와같은 최근의 상황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은 그 스스로 인지할 겨를도 없이 이미 모더니즘시대의 유아독존식에 해당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개념을 탈피하게 된다. 더하여 극소수의 작가들을 인식하기보다는 경제소득의 상승세에 힘입어 사회적인 욕구가 증가됨으로 인하여 열악한 작가들의 창작여건이 개선되어져감으로서 모더니즘시대의 선택된 작가들만의 무대가 보다 폭넓게 확장되어가게 된다.

  더불어서 이제는 작가들의 복합적인 대사회적인 대응전략이 없이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다원적인 정보체계와 소통수단을 형성하고 있음으로서 독자적인 범주에서 머물러왔던 과거의 폐쇄된 의식구조에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므로 자의든 타의든 문화시장의 진출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부상하게 된다.

  작품세계의 대중적감각 마져도 하나의 전략으로 등장한 팝아트 이후의 작가로서 엔디워홀은 영화배우나 탤런트들이 누리던 스타로서의 지위를 누리게된 하나의 예이지만 갈수록 복합적인 구조로 변모해 가는 현대미술의 의식과 사회적인 소통체계는 작가들의 창작여건 까지도 그에 상응하는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2. 창작여건의 변화와 사회적 소통체계의 다원화

  최근 국내미술전시회의 최근 추이를 보면 급증하고 있는 인구와 전시회수가 얼마나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86년도 전시통계가 총 1,977건이었던 것이 1996년도에 와서는 5,936건으로 3배 정도가 늘어나고 미술인구 역시 마찬가지로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문예진흥기금은 아직까지 99년도 예산이 194,798백 만원 정도로 전년도96,701백 만원에 비해 101,4%의 획기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작가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은 너무나 미약하다.

  늘어나는 작가들의 숫자와는 달리 작가들의 생활환경은 갈수록 상승되는 제작비용과 작업환경, 생활비용 때문에 상대적으로 요구되는 사회환경적인 변화에서 점점 더 멀어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제작비용도 그러하지만 전시비용이나 도록제작과 홍보에 관련된 일체의 행위가 불과 10년 전과 비교하여도 몇 배 이상의 지출이 요구된다.

  특히나 국제적인 전시나 아트페어에 진출하려면 작가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출이 요구되며 여기에서 화랑이나 기업체, 국가적인 지원과 장기적인 투자가 요구되어진다. 여기서  지원이 갖는 의미는 비단 위의 기구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의식구조와 언론기관의 정론적인 지원과 홍보가 큰 역할을 하게된다. 바야흐로 작가 그 스스로가 갖는 독자적 소통체계의 일단 한계가 드러나게 되며 작가를 둘러싼 환경적인 지원과 소통체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 한 정상급 작가로서의 위상은 거의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작가의 자기소통체계가 이미 급속하게 변모하는 사회적인 요구에 의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대응방법을 요구하게되는 결과로 이어지며, 급기야 여기에 선택된 극소수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작품의 절대가치에 불문하고 사회적인 소통체계 자체에 참여 할 수 없게되는 소외현상을 야기하게 되었다.

  여기에 국제화되어가는 미술계의 전반적인 추세는 더더욱 이와같은 현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술시장은 날이 갈수록 세계화되어가면서 국경이 무너져가고 있으며 그 시장의 공유인구나 가능성의 폭은 언어와 인종을 넘어서서 무한대의 범위로 확대되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들이 시카고와 마이에미, 바젤, 파리 등지에서 쉴 사이 없이 열리고 있으며, 세계적인 화상들이 이곳을 통하여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판매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소더비나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Action house의 경우 연간 판매량이 약 2조원을 넘는 숫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국내의 경우는 그 작가가 한정되어있기는 하지만 환경미술시장만 해도 년간 수 백억 원 대를 넘나들고 있다. 최근 개설된 한국경매주식회사나 서울경매, 화랑협회의 아트경매 등이 49%를 넘는 낙찰률을 기록하면서 그나마 작가들의 창작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매우 긍정적인 탈출구로 등장하고 있다.

이와같은 나름대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 가능성이 극히 미약하며, 한 작가의 세계적인 무대진출은 현재보다 더욱 장기적인 안목으로 범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다양하고도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그만큼 이제는 독자적인 작가의 창작만으로는 다원적인 현상으로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적응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된다.

3. 미술의 문화산업적인 기능


  미술문화는 이제 더 이상 창작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업실에서만의 푸른노트가 아니라 사회적 향유의 차원으로 진전되어지는 경제창출의 신드롬을 이루어내는 신기루처럼 여겨지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제3의 고부가가치를 창조하며 경제수단으로서의 미술은 여러 선진국에서 이미 다양한 방법론으로 그 가능성을 선보였다.

  이것은 아도르노나 하우저의 사상적인 연구에서 비롯되어지는 사회학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물질문명을 넘어서 문화적 향유를 갈구하는 문명사회의 필연적이기도 한 현상으로서 경제선진국에서 자연스럽게 야기되는 21세기의 새로운 비젼을 제시한다.

  몇가지 좋은 예를 들어보면 영국의 산업에서 약 1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0조에 해당하는 규모를 예술이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곧 자동차산업과 맞먹는 규모이다. 1990년에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반 고흐 100주기 기념전에서는 외국인에게만 150만장의 예약입장권이 팔려나갔으며 그것도 시간대별 입장권이었다. 당시 전시내용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에서 135점의 유화와 오셀로의 크로엘러 뮤엘러 박물관에서는 250여점의 드로잉이 선보였을 뿐이다. 물론 세계각국에서 빌려오는 보험료나 운반과정의 경비가 많이 지출되었겠지만 이 정도의 미술품을 관람하려고 수 백만명이 몰려든다는 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외쳐대는 신지식인의 사회에 접어든 고도의 문화GNP덕분이기는 하지만 이로서 전시기간동안 관람객으로부터 창출되는 네델란드의 경제적인 부가가치는 아트디자인 상품과 도록판매를 포함하여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한다.

  최근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의 통계수치에서는 소장미술품을 내용으로 하는 문화기획상품들의 판매가 입장권의 수익을 넘어서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미술관 박물관 연간 관람객 총인원이 약 5억 명에 달하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이미 국내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는데 이중섭전이 열렸던 겔러리 현대에서는 하루에 1만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줄을 지었고 1개월로 본다면 약 20만 명이 넘는 숫자를 기록한다.

다시 불란서의 예를 보면 파리의 봉피두센터가 년간 관람객 수 800만 명을 넘어서 왔으며 건축당시의 예상인원을 훨씬 넘어서서 용량을 초과한 관계로 현재는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가 있다. 여기에 에펠탑이 약 40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있으며 얼마전 사진으로만 개최되었던 우리나라의 「아! 고구려전」은 1백만 명을 훨씬 넘는 관람객이 다녀감으로서 기획의 묘미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며 문화예술이 순수한 작품발표의 기회라는 1차적인 개념을 탈피하여 철저한 기획단계의 준비와 여러 가지 주변상황을 고려한 능동적인 대처가 보다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본질적으로 제기하는 계기가 되면서 최근 미술경영. 행정분야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이와같은 문화경제창출이 커다란 투자 없이도 가능한 아이디어전략으로 판단하고 어떠한 분야보다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더불어서 이 분야는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는 이미지재고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관광객유치에도 그 나라의 정체성(identity)을 갖는 미술관 박물관은 더 없는 자원으로서 우선투자의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미국은 국립예술기금(NEA)나 국립인문기금(NEH)은 의회로부터 수천억을 순수히 작가들에게 지원하는 예산으로 편성하며, 프랑스에서는 1993년 1년 문화예산만도 130억 프랑, 우리 돈으로 약2조원에 달하고 있고 일본 역시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을 두고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므로서 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 나아가서는 고도의 문화전략으로서 고부가적인 경제창출의 요인이 되고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순수미술의 차원을 환경미술과 건축, 산업전반에 걸친 영상과 디자인분야까지 확대한다면 그 규모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확대되어지며 21세기의 GNS의 문화적인 시대를 맞이하여 유망한 분야로 손꼽히고 있다.

  가장 좋은 예로서 최근 건축분야에서 실내외 장식과정에 순수미술개념으로 적용되어지는 조각이나 벽화, 분수대의 조형적, 설치미술개념적인 분야들은 건축이나 디자인에서는 해결되기 힘든 분야로서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회화나 조각가들에 의해 직접 설계되어지고 건축과 조화를 이루어 이상적인 환경미술로서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또한 디자인은 곧 현대산업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서 가전제품과 의상 자동차 문구류 장식품 등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데 자동차 수 십만 대를 수출하는 효과를 얻었다는 영화 쥬라기공원의 6분 30초가 슈퍼그라픽으로 그려진 장면이어서 전체 예산 350억원의 70%정도를 차지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일이다.

  순수미술의 영역이 이미 슈퍼캔버스라는 말로도 대변되지만 이미 그 방법적인 범위가 무소불능의 종횡무진으로 팽창되어 가고 있다. 그만큼 위에서 언급한 문화산업적인 가치가 상승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이에 관련된 전문가의 양성도 시급하지만 작가들 스스로도 산업현장을 비롯한 행정, 경영 등 응용적인 여러 분야와 연대하여 문화경제학(cultural economics)의 개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 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곧 순수미술의 영역을 다양화하여 사회적인 기여와 제2의 경제를 창출하는 문화의 절대영역을 선점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