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07월 26일.
떠나기 전날에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밤 11시. 창밖을 내다보며 걱정부터 앞선다.
아침 5시를 전후로 세차게 내리던 비는 기진맥진 했던지
약간 추춤하며 그 기세가 꺾였다.
임진강변 어유지리 쪽에는 비가 오는지 안오는지 매우 궁금하다.
경기북부 지방에 멎었다 개었다를 반복하며 30~60mm정도
더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다.
11시30분에 신도림 전철역 2번 창구에서 어유중학교 교장 선생님과
카풀하기로 약속하고 10시 집을 나설 때는 비는 멎어 있었다.
교장선생님과 사모님 외 또 한분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어유중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30분이 조금 지나 있었고
가는 빗방울이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내심 안도를 했지만 빗줄기가 거세질까봐
마음은 조마조마 하였다.
방학중인데도 학생들이 학교에 니와 공부하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열심이였다.
오후 1시경에 교감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김춘기 시인이 도착했고
교감선생님이 황포돚배 선착장에 전화를 걸어 알아 본 결과 비로 강물이 범람하여
배를 띄울 수 없다는 얘기에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2시40분 경에 일행 모두가 도착했다.
다목적실(강당)에 모여 숙소를 배정받고 각자 짐을 푼 다음 곧 바로 다시 모여
임진강변 고적(유적)답사에 들어 갔다.
(1)황포돚배 선착장
비로 인하여 누런 황토를 토해내고 있는 임진강 황포돚배 나루는 선착장을 집어 삼키고
거대한 폭음을 내며 위압감을 주고 있었고 황포돚배는 초라하게 임진강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임진강변의 각종 쓰래기 부유물들이 빙글빙글 돌며 떠내려 가다 선착장으로 밀려
엄청난 쓰레기장을 형성하고 있어 양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우리는 훗날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그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사진:김춘기 시인>
위치 :경기도 적성면 두지리
승선료: 8,000원/인.
전통 방식에 따라 목재로 만든 황포돛배는 길이 15m, 폭 3m로 정원은 47명.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출항한다.(1일 7회 운항)
동력은 모터로 왕복 5km를 돌아오는 데 45분이 걸린다.
(2)연천호로고루 성벽(城壁)
호로고루 성지는 임진강변에 있는데 비로 인하여 강물이 범람, 위험하여 관광객을
받지 못하고 철문을 굳게 닫아 놓고 있었으나 주차장 옆 전망소에서 누런 임진강 물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성벽은 물속에 잠겨 보지 못하였지만 대형 안내 표시판에서 그 내용을 간추려 본다.
위치 :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 - 1 일원.
사적 : 제 467호로 지정.
내용 : 호로고루에서는 고구려 와당 등 기와가 다량 발견되고 있어 고구려의 임진강 방어선을
관장하는 가장 높은 등급의 지휘관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구려 패망 후 신라 성벽이 고구려 성벽을 감싸고 있어 신라군이 주둔하면서 고구려 성을
재사용 했슴을 알 수 있다.<사진: 펌>
(3)신라경순왕릉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기도 내의 고랑포 나루터 뒤편 남방 한계선과
약 50m 인접한 나직한 구릉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경순왕은 신라 제56대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金)씨이고 이름은 부(傅)이다.
경순왕이 왕에 오를 당시에 국가가 후백제. 고려, 통일 신라로 분열되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있었다. 이에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건국후 56왕 992년간 이어 온
신라를 고려에 귀부하였다. 경순왕이 왕위에 올라 9년간 재위한 때였다.
그후 경순왕은 정승공 상부(尙父)의 지위에 봉해지고 왕건의 큰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5남2녀를
두었고 귀부하여 43년을 더 살다가 97세의 나이에 고려 개성 유화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신라 유민 수만이 침구와 양식을 지고 시신을 상여에 매고 경주로 가고자 개성 도성을 떠나니
개성이 텅비게되자 고려조정에서 놀라 "왕의 시신은 도성 백리 밖을 못나간다."라 하여 군사들이
가로막자 고랑포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이곳에 장례를 모시고 수만의 유민이 엎드려 곧을 하니
경천동지했다고 한다. 이에 고려조정에서는 시호를 경순이라 하고 능호를 단릉(湍陵)이라하여 왕의
예로 장례하였다.(鷄林文獻錄)
매년 5월 첫 일요일과 10월3일 개천절에 춘향대제와 추향데제가 봉행되고 있다.<사진:펌>
위치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 - 2.
사적 :제 244호(1975.06. 25, 지정)
돌아 오는 18시경 저녁을 먹기 위해 "농부가' 식당에 들려 이지역 장남면의 특산 콩인 장남콩으로
만든 두부 정골과 역시 이 지역에서 개량되어 생산되는 장남고추로 미각을 충족했다.
식사 후 어유중학교 숙소로 돌아 왔을 때는 19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비가 실날 같이 내리고 있고 또 다시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문학인으로서의 정신을 가다듬는 촛불
행사와 캠프 파이어를 할 수가 없어 생략하고 선생님들이 학교 부지안에 일군 텃밭에서 상추.쌈채소,
깻잎, 피망, 장남고추, 오이, 도마토, 참외와 적성읍에서 얼리지 않는 생돼지고기를 사와 바베큐를
해서 한잔하는 술의 향연에 앞서 시낭송을 하고, 노래자랑도 이어졌다.
신기 한 것은 11시경에 여흥이 끝나 뒷정리 후에 비가 쏟아져 마음이 흐뭇했으나 다음날까지 비가
내릴까 걱정도 되었다.
2008년 7월27일.
새벽 4시경에 잠이 깨어 학교 앞 주변을 돌아보고 날씨를 점검한 다음 다시 숙소로 돌아 와 잠을 재
청하려니 한 번 깬 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05시10여분.밖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으나 비는 더 이상 내릴 것
같지 않아 마음이 한결 편했다. 07시 전원 기상을 하고 08시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09시20분 고려조 왕들과 고려조 충신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고려조 종묘인 숭의전으로 향했다.
(4)숭의전(崇義殿)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고려조 왕을 봉사(奉祀)하던 종묘로 고려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가 있던
자리에 1397년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 것이 시초이다.
사당 건립 이후 1399년 정종 1년에 왕명으로 고려 태조,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렬왕,공민왕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였다.그 이후 1425년 세종 7년에 이르러 조선 종묘에는 5실을 제향하는데
고려조 사당에 8왕을 제사지내게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하여 태조,현종,문종,원종 등 4왕만 봉향토록
하였고 1451년 문종1년에 숭의전이라 이름짓고 고려조 4왕과 더불어 고려조 충신 복지겸,홍유,신숭겸,
유금필,배현경,서희,강감찬,윤관, 김부식,김취려,조충,김방경,안우,이방실,김득배, 정몽주의 16위를
배향하였다.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총 5 차례의 개수와 중수를 반복하다가 한국전쟁중에 전소하여 1971년
그 터를 사적으로 지정하고 다음 해에 복원하니 정전(4왕의 위패 모신 곳))을 비롯하여 배신청(고려조
16공신 위패 모신 곳) 이안청(숭의전 보수공사시 잠시 위패를 옮겨 모시는 곳) 전사청(제레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 곳. 숭의전 제사는 생식제레로 전사청에는 굴뚝이 없다.) 앙암재(제례
때 사용하는 향 축문 제복 등을 보관하고 제례연습을 행하는 곳)의 4동의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매년 음력 3월3일과 9월9일에 춘향데제와 추향대제가 봉행된다.<사진:펌>
위치: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7번지.
사적:제 223호(1971. 12.28.지정)
관리:왕씨 종친회
(5)적벽 글씨(?) ㅡ>아미산 끝자락 "만장단애"
숭의전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면 아미산 끝자락 만장단애에 임진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깍아지른
절벽(위에서는 내려다 볼 수가 없고 극히 위험하다.)이 있는데 배를 타고 절벽을 올려다 보면 암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다. 그 암벽의 글씨를 사진으로 촬영해서 숭의전 이안청 앞에 걸어 놓고 그 글을
정서체로 써서 액자에 담아 걸어 놓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곳을 다시 찾아 와 황포돗배도 타보고 절벽에 새겨진 글도 둘러보고 싶다.
<암벽사진과 정서글씨를 핸폰으로 촬영했는데 흐려서 못 올림이 안타깝다.해설도 올리고 싶었는데...>
*끝으로 이번 한국영상문학협회의 문학기행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어유중학교 김운상
교장선생님, 김성로 교감선생님, 교무부장님, 권선생님, 홍선생님 그리고 어유중학교 운영위원장님에게
한국영상문학협회의 회원들을 대표하여 감사드리며 한국영상문학협회 회원과 그 가족 여러분
그리고 비록 함께하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으로 성원해주신 모든 회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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