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이 멀어도
시 : 이영철
그림 : 김성로
먼 길 돌아와 본 사람은
안다
그 길 돌아온 길목마다
어떤 낡은 풍차가 돌고 있었는지를
고통으로 들쑤시는 죽은 나무가지
낡은 헝겊 뭉치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까마귀 떼들
말 속에 갇힌 변명
갇힌 인생을 낭비한 무지한 죄
숨 막히는 비탄들
먼 길을 돌아와 본 사람은
안다
걷다가 주저앉다가 기어가다가
빨래줄에 펄럭이는 남루한 일상
소리없이 울다가
아니 웃다가
더러운 손을
죄악으로 피 묻은 손을
싹뚝
자르고 싶은 충동
아픈 눈길의 덫
먼 길을 돌아와 본 사람은
안다
잡았다 놓아줌의 용서
놓았다 잡아주는 은혜
발길을 뗄 때마다 검문 당하는
조각난 시어들
뿌옇게 밝아오는 여명
선지해장국 눈물 반 스푼
일용할 먹이에 후춧가루를 뿌리며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때 지난 유행가를 듣는다
먼 길 돌아와 본 사람은
울지 않는다
울지 않으려 웃는다
웃다 운다
'그림과 글 > 그림과 시(picture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을 바다의 그리움/김종순 (0) | 2008.08.06 |
---|---|
꿈/조동목 (0) | 2008.08.05 |
생명의 서(書)/서귀순 (0) | 2008.07.21 |
임진강에서(정호승) (0) | 2008.07.19 |
소심한 분양을 하다(윤준한) (0) | 2008.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