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분양을 하다
글 / 너울 윤준한
그림 / 솔뫼 김성로
투기꾼도 땅 부자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무료로
방 한 칸씩을 내어 주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에게
언제나 같이 하고픈 이에게
마음이 아주 가난한 이에게
가벼운 다툼으로 싸운 이에게
상처를 주고 떠나간 이에게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다른 것은 줄 것이 내겐 없어
주저 없이 앞뒤 가리지 않고
방 한 칸씩을 기꺼이 내어주니
그렇게 내가 편할 수가 없었다
사랑도 미움도 증오도 애증도
마음에 방 한 칸을 내어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있는 것인데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넒은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이 얼마나 쉽고도 쉬운 일인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방을 나누어주면
진정으로 살아볼만한 세상이련만
그리하지 못하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보이는 것은 눈물과 한숨뿐이었다
소심한 분양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방을 만들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림과 글 > 그림과 시(picture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서(書)/서귀순 (0) | 2008.07.21 |
---|---|
임진강에서(정호승) (0) | 2008.07.19 |
기 와 (곽경미) (0) | 2008.07.07 |
삶은 모호하거나, 그렇지 않거나(이세종) (0) | 2008.07.05 |
얘야, 울지를 말어라 (0) | 2008.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