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시 : 김금용
그림 : 김성로
너의 눈두덩은 왜 그리 깊으냐 왜 그리 어둡냐 동굴에 꼭꼭 갇혀있으면서도 왜 네 눈길은 축축이 젖은 채 나를 온종일 쫒는 것이냐 닫힌 내 창을 두들기는 것이냐 여전히 꿈속까지 이불 속까지 찾아들어 내 입술을 훔치는 것이냐 깊숙한 모자에 가려져 네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데 네 목소리 네 두터운 어깨는 다락방 가방 안에 밀쳐두었는데 젖어서 낯가림하는 기억들은 왜 그리 날 쫒는 것이냐 어둡고 긴 것이냐 결국은 다 두고 떠나왔다는데 바다를 건너올 때 푸른섬을 건너올 때 물결이 내 허리를 감고 물소리가 내 귀를 핥고 물바람이 내 입술을 훔치며 붙잡을 때 나는 잔인하게도 다 버렸다는데 뒤돌아보지 않고 한 점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온갖 푸념을 다 쏟아 부으며 온갖 핑계를 대며 시들어가는 장미는 차라리 꺾자고 식탁 위 투명한 물병 안에 너를 꽂아둔 채 문을 닫았는데 꽃잎이 빨갛게 흰 식탁보 위를 덮고 마지막 물기마저 메말라 검게 타들어가도록 냉혹하게 돌아보지 않았는데 오직 그렇게 널 묻어두고 한여름 내내 맨발을 드러낸 채 햇살 넘치는 거리를 쏘다녔는데 동네 골목 귀퉁이 24시 마트 네온사인 아래에서, 작은 찻집 탁자 너머로, 간선도로 넘치는 자동차 헤드라이터 앞에서, 자꾸 너를 맞닥뜨리는 것이냐 새 살 돋은 발가락이 왜 꾸역꾸역 고갤 디밀고 다시 아프다고 하는 것이냐 불쑥 내 허리를 껴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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