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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어린왕자의 기억들·3 / 나병춘

 

 

 

어린왕자의 기억들·3


                         시 : 나병춘

                       그림 : 김성로


산길을 가는데 턱, 허니

멧비둘기 한 마리 시냇가에 내려앉는데

나도 때는 이때다 싶어 비둘기 날개 속으로

사뿐 들어가 보는 것인데 비둘기는 달아날 생각도 없이 서성거리며

돌멩이도 쪼아보고 라면 부스러기도 쪼아보는 것인데

아차, 호주머니에 좁쌀이라도 챙기는 거였는데

비둘기가 날기 시작하자 나도 덩달아 날기 시작하는 거였는데

동동동 날다가 구름 하나 있어 턱, 허니 그곳으로 달려가 숨었는데

그 모양을 본 비둘기가 안심이 안 되었는지

나를 찾으러 구름 속으로 자맥질치는 거였는데

구름 속에서 한나절을 헤매던 나는

구름이 산꼭대기로 날아가자

사뿐 너럭바위 위로 건너뛰어 벌러덩 드러누웠드랬는데

비둘기는 찾다 찾다 못 찾고 구구국 구구국거리며

어제도 오늘도 울고 다니는 중인데

비둘기 눈이 빨갛게 충혈된 까닭이 나 때문이었는지

구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구구국거리는 울음소리 때문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는데

산길에서 언젠가 마주친 적 있는 멧비둘기 하나가 시방

창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가다 소란소란거리는

은사시나무 잎새 사이로 쏜살같이 숨어버리는 거였는데

그 후론 아무 소식이 없어 나도 심심하던 차였는데

 

 

 

 



 

                                                                                                 솔뫼 김성로 사이버갤러리 : http://people.artmusee.com/ksm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