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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우는 사람이 행복하다 /마경덕

            

 

 

               우는 사람이 행복하다

 

                                                                                                                      글 :  마경덕 / 그림 : 김성로


   나무도 무릎을 꿇는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수목 한계선 그 지대에 사는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 때문에 마치 무릎을 꿇은 모습이라고 한다. 몸을 낮추고 살아남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오랜 세월 폭풍우를 견딘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은 곱게 잘 울어 고가로 팔려나간다. 무릎 꿇은 나무는 혹독한 눈보라에 수많은 날을 울었을 것이다. 차곡차곡 제 몸에 울음을 쌓아둔 나무는 제 몸에 활이 스칠 때마다 애끓는 속울음을 흘려 메마른 영혼을 적시고 영혼을 울린다. 
  몇 해 전 대청봉을 내려오다 눈잣나무 떼를 만난 적이 있다. 군락을 이룬 눈잣나무들이 일제히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나무가 기어간다
 일제히 바람을 등지고 포복 중이다
 눈보라가 귀때기를 베어 가는 설악산 대청봉
 눈잣나무가 소리친다 엎드려!
 피융피융 바람총탄 빗발치는 산꼭대기 
고개를 낮추는 게 살길이다
 평지에선 곧추 서는 바늘잎 눈잣나무

 눈밭을 기어 엉금엉금 천리를 나아간다
 능선에 번지는 물결, 물결
 무릎이 헐고 목이 꺾인
 눈잣나무 파도가 산을 넘는다
 떼로 몰려 벌판을 이루고 
산 하나 힘겹게 떠메고 간다
 바람을 버틸만한 녀석은

 줄기에 뿌리내린 눈잣나무 뿐
 바람 속에 둥지 틀고
 엎드려 사는 법 누가 가르쳤을까
 스스로 목을 치고 바닥에 누워있다
 -「눈잣나무」전문    

       

  주어진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는 나무들. 평지에 심으면 곧게 자란다는 눈잣나무는 산꼭대기에 부는 바람을 피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피융피융 바람총탄 빗발치는 산꼭대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포복을 하는 군인처럼 나무들도 기어가고 있었다. 관절도 없는 나무들이 눕거나 무릎을 꿇는다. 바람이 없었다면, 나무는 목을 치켜들고 팔을 뻗고 키를 늘려갔을 것이다. 나무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살고자하는 본능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모래폭풍을 만난 낙타도 폭풍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무릎을 꿇는다. 짐을 실을 때 짐을 내릴 때도 낙타는 주인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는다. 어려움이 닥칠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유다왕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을 때 선지자 이사야도 왕의 죽음을 예언하였다. 그 말을 들은 히스기야는 통곡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간절한 울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정해진 수명에 15년을 더 받는 축복을 받았다.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고난을 견뎌온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를 만든다. 

 

  강을 건너간 밧줄 하나가 건너편 숲에 닿아있었다. 장마에 불어난 강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강물을 가로지른 긴 외줄, 참나무 허리에 건너편 물푸레나무가 묶여있다. 밧줄의 거리만큼 허공이 좁혀진다. 

 

  7월의 허리통이 한 자나 늘었다. 불어난 물소리에 자박자박 물푸레나무 발목이 젖는다. 물푸레나무숲으로 바람이 밀려가고 물푸레 가지에서 첫눈 뜬 새소리가 참나무숲으로 밀려온다. 깊은 물소리도 따라온다. 

 

  불안을 묶고 아슬아슬 건너던 밧줄, 출렁이던 무게를 버리고 저리도 태연하다. 멀고 먼 것들, 마주 보며 지나치던 것들, 끝내 닿지 못한 것들이 서로를 어루만진다.

 줄 하나 붙잡고 지금 이 산과 저 산이 통화중이다.
        -「 밧줄이 숲을 끌어당긴다」전문      

 
  간절한 마음이 허공에 놓인 길을 붙잡고 강을 건너 왔을 것이다. 끈 하나에 이편과 저편이 묶이고 참나무 허리에 건너편 물푸레나무 발목이 묶였다. 밧줄의 거리만큼 허공이 좁혀지고 바람이 몰려오고 새소리가 건너간다. 강물을 가로지른 밧줄은 생명의 끈이다. 하나뿐인 생명은 얼마나 소중한지 죽음의 목전까지 가본 사람은 안다. 아슬아슬 강을 건널 때 끈 한쪽은 신이 잡고 계셨다. 간절해지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질경이는 밟힐수록 더 깊이 뿌리를 묻는다. 그늘에서 자란 것들은 볕으로 나가면 금세 타죽고 말지만 땡볕에 길들여진 것들은 볕에 상하지 않는다. 시련은 심약한 것을 강하게 만든다. 살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고난에 사람은 성숙해간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걸어온 발자국이 어지럽다. 결혼 후 십 년 동안은 마음 고생이 많았다. 매운 시집살이에 수많은 날을 울면서 보냈다. 호랑이 같은 시부모 철부지 시누이의 등쌀에 밤마다 베개가 흥건히 젖었다. 남편은 어머니에게 금쪽같은 아들이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남편도 아내의 눈물을 알지 못했다. 잠자리에 누워 소리 없이 흘렸던 그 눈물이 기도처럼 간절했다. 살을 맞댄 남편도 모르는 눈물을 신은 다 알고 계셨다. 귀때기가 파랗던 그 시절, 울음주머니를 차고 살았다. 억울한 일들은 모두 눈물로 흘러나왔다. 나는 그때 참는 법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통스럽던 그 시절에 나는 훌쩍 키가 자랐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그만큼 양보한다는 것. 나를 덜어낸 만큼 내 키는 자라는 것이다.

 

  슬픔을 가진 자는 그 슬픔이 다 터져 나오도록 울어야한다. 당장 눈물만한 위로가 없다. 가능한 소리지르며 후련히 울어야한다. 울다보면 속울음이 터지고 쌓인 슬픔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울음은 치유의 능력이 있다. 아직 눈물이 남아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불행한 사람이다.

 

    1

 

    지붕에서 쥐가 운다. 덩어리로 뭉친 울음이 끅끅 목에 걸린다. 간밤에 취객이 토해놓은 밥알을 밥주머니에 잔뜩 처넣은 날개 달린 쥐. 허기진 주둥이로 제 그림자를 쪼아먹는다. 뭉기적 뭉기적 처마 끝으로 걸어가 잘린 발목을 들여다보고, 멀거니 황사 낀 하늘을 바라보고, 생각난 듯 토해놓은 울음을 다시 집어먹는다. 오래 전 시궁쥐로 변한 비둘기 한 마리. 한 홉의 영혼에서 슬픔이 샌다.

 

2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귀, 옥탑방 노망난 할망구가 고함을 지른다. 퍽퍽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 평생 많은 눈물을 흘린 짜디짠 소금주머니, 쪼글쪼글 들러붙은 울음주머니가 끅끅, 마른 눈물을 흘린다. 뻣뻣하게 쇠어버린 슬픔이 몸밖으로 빠지지 않는다.
   -「울음주머니」전문 
  


  봄만 되면 우리 집 옥상에서 비둘기가 우는데 그 소리가 끅끅 목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 그 답답한 울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대신 울고 싶어진다. 슬픔도 도가 지나치면 나오지 않는다. 바람 빠지듯 헛웃음만 나온다.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소리만 목을 타고 나온다. 눈물도 지치면 동이 난다. 울 수 있을 때 울어야한다.
  봄만 되면 우리 집 옥상에서 비둘기가 우는데 그 소리가 끅끅 목에 걸려 빠지지 않는다. 그 답답한 울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대신 울고 싶어진다. 슬픔도 도가 지나치면 나오지 않는다. 바람 빠지듯 헛웃음만 나온다.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소

 종일 지붕에서 운다.
 이층 창문, 틈새에 터를 잡고
 알콩달콩 살던 비둘기 부부

 홀시어미, 비둘기 울음이 귀신울음 같다 하고
 며느리, 청승맞은 울음이 말 못할 내 설움 같아
 그럭저럭
 비둘기똥 치우기를 삼 년

 

 늙은 시어미
 더는 못 참는다
 답답한 그 울음 저승사자처럼 끔찍하고
 똥보다 더 독하다고

 

 기어이 
 아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자
 비둘기 울음 빨라졌다
 소리와 불안이 뒤섞여
 철제 사다리가 휘청거렸다

 

 분홍발을 가진 새끼 한 마리
 퍼덕퍼덕 앞집 베란다 지붕에 내려앉고
 나뭇잎 쪼가리, 묵은 먼지가
 비닐봉지에 담겨 내려오고 
 오 분만에 집 한 채가 철거되었다

 

 구우국 구우국

 

 비둘기똥 보다 독한 울음이
 지붕에서 흘러내린다 

 

-「 비둘기가 운다」전문

 

   비둘기똥과 울음을 참지못한 시어머니는 비둘기 집을 철거하라고 불호령이시다. 병을 앓고 게신 어머니는 그 울음소리가 저승사자의 울음처럼 들린단다. 사다리를 타고 올랐던 남편은 어린 새끼를 보고 일주일을 미루었다. 한 주가 지나자 비둘기집이 철거되었는데 분홍발을 가진 어린 새끼가 놀라서 푸드득 앞집 베란다 지붕으로 날아올랐다. 묵은 먼지가 풀썩거리고 오 분만에 집 한 채가 사라졌다.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일찍 알아버린 그 어린 비둘기도 그때 키가 한 뼘 자랐을 것이다.
 
  쓴맛 다음에 단맛이 와야한다. 단맛을 먼저 알고 나중에 쓴맛이 온다면 쓴맛을 누가 가시게 하랴. 삶이 소태처럼 쓰다면 당장 무릎을 꿇어야한다. 물러설 곳이 없는 절박한 그곳에 신은 계신다. 사람도 신이 빚은 명품이다.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지으신 것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역경이 사람을 만든다. 모난 부분을 깎아 상한 영혼을 회복한다. 겸손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만이 본래의 명품이 될 수 있다. 나는 가능한 명품 피아노처럼 바이올린처럼 멋지게 울고 싶다. 무릎을 꿇으면 신이 나를 연주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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