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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낙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 윤준한

              

 

 

 

낙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글 / 너울 윤준한

                   그림 / 솔뫼 김성로

 


구겨진 옷은 깨끗이 다림질을 하고

흙 묻은 구두는 정성스레 손질을 한 후

여자는 향기 가득한 차를 사이에 두고

남자와 그렇게 오붓한 시간을 만든다

종이에 지난 과거를 열거하던 남자는

여자의 눈주름에서 머리 위 서리에서

흑백 무성영화 수백 편을 보고 있다

쏟아져 내리는 별빛만큼 버거웠던 일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은 행복이

앰프 없는 영사기가 되어 지나가고 있다

빈공간이 없을 만큼 절절히 피어난

종이 위 흘러간 과거에 파묻혀

남자는 지독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짧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때론 단순하다해도 좋을진대

정해진 수순처럼 철문이 닫히는 현실에

허탈한 숨소리만이 허공을 떠돌면

여자는 남자의 숨소리를 고이 접어

가슴 저편에 묻고 웃음을 짓고 있다

 

남자는 목이 마르고

가슴속에 그것도 목이 마르고

세상 끝도 그렇게 타들어 가는데

여자는 타들어 갈 속조차도 없으면서

남자만을 바라보며 늘 미소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