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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빈들에 서서 / 이서린

        

 

 

 

빈들에 서서


                                시 : 이서린

                              그림 : 김성로

 

 

 

나는 이제 갈란다 꽁지 빠진 깃털 너덜거리는 날개 짓 푸드득

빈  들 힘껏 날아 오를란다

벼 벤 그루터기 그 지난 상처 같은 너른 논

돌고 돌아 하늘 높이 오를란다

늙은 나무 묵직한 허리께 지나 긴긴밤 지새도록

못 다한 이야기 오래된 정자나무 둥치 아래 지나서

묵묵히 묵묵히 빈들 건너 갈란다

겨울 초 푸릇푸릇 남은 밭 귀퉁이

마른풀 촘촘한 들판 가운데 앉았다가

우우우 달려오는 바람소리

듣다가 천천히 들길 따라 갈란다

물 좋고 정자 좋은 생이 어디 있더냐

저 들 넘어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

지나온 길 돌아보며 굽이굽이 생각하고

이어지는 빈들처럼 마음 환히 비우고

바람에 서걱이는 풀잎 따라 가 볼란다


이 마음 닦아주는 여기 이 자리에 처음과

마지막 다시 생각하면서 눈감고

온 몸으로 바람소리 듣다가

꽁꽁 언 땅 가르며 먼 길 떠날 새들처럼 

조용하고 힘차게

이제 나는 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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