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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뿌리/ 라스무스

 

 

 

뿌 리

 

         시 : 라스무스

        그림 : 김성로

 

꽃이 말하기를

슬픔도 부서지는 어디 쯤 황금의 사원이 있어

천 년의 밝음이 내린다 했다

칠흑의 이 진창, 흙더미가 쏟아질 때마다

손톱 끝 정체불명의 저음이 흘러나온다

언젠가 섬광처럼 피어나던 꽃잎, 밝음도 뭣도 아닌

그저 너무 뜨거워 갈라져버린, 그러나

차가워라

검은 구름과 하얀 비, 푸른 진눈깨비 나리는 허기의 밤

이리떼의 울음 같은 촉수 비틀어 가닥가닥 얽힌

핏줄을 풀다 보면

보이지

몸 깊숙히 관통해 들어온 빛, 그 빛 지나간 뒤 무수히 일렁이는 안개

외웠던 길 죄다 꽃잎으로 터져버리고

낯선 풍경들이 몽유처럼 떠돈다

황금의 사원은 가도가도 만나지 못할거라 했다

길은 붉게 저물고, 저물어 노래가 되겠지만

노래로도 모이지 않는 몸의 폐허

어둠을 열고 고대의 지층에 적힌 생의 적벽을 읽는다

짚시여

아무도 그대가 지난 자리 꽃잎으로 울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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