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은 단풍
9월 24일(목)
교정에서 붉게 변해버린 벗나무 잎 하나를 주었다.
전에는 예쁘고 붉게 물든 단풍이 좋았는데
이제는 벌레먹어 검붉은 단풍잎이 더 좋아진다.
화려하게 예쁘지는 않지만
세월의 흔적이 부분부분 배여있다.
대부분 푸른 잎들이 나뭇가지에 견고하게 달려있는데
먼저 붉어져버린 벗나무 잎들은
약한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진다.
자라나는 학생들을 지켜보다 보면
이런저런 사유로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게된다.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저 낙엽처럼 상처를 받아
먼저 떨어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곱고 싱싱한 것이 참 아름답다.
그런 잎은 너무 많아 흔한듯 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흠 하나 없는 단풍은 별로 없다.
모두 하나씩의 작은 상처들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도 그러하다.
성실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싱싱한 단풍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온갖 풍상과 고통을 견디고
삶에 찌들린 사람들의 잔잔하지만 밝은 웃음은 더 아름답다.
그 웃음에는 처연한 아픔이 스며있다.
그들 앞에만 서면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살든 하나의 인생길이다.
상처는 감춘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 떨어진 낙엽처럼 그 흔적이 기록되는 것이다.
그 흔적들에서 지난 계절의 질곡들을 읽는다.
싱싱하든 벌레 먹든 나뭇잎이다.
별다른 차이도 없다.
어릴 땐 깨끗한 단풍잎이 좋았다.
지금은 벌레먹은 단풍잎도 좋아진다.
좋거나 나쁘다는 판단은 주관적인 판단이다.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도 시대적인 편견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름답다거나 그렇치 않다는 것도 그러하다.
하물며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여 비난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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