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에서 만리장성(산해관)으로 가는 길(5월 5일)
진저우(금주)에는 오래된 사찰들이 몇 군데 있다.
지금은 그냥 관광지로 쓰이고 있지만 옛건물을 통하여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금주의 구시가지를 벗어나니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신도시와 별 다를게 없다.
아마 다음에 올 때는 거의 완전한 형태의 신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야! 여긴 대박이겠구나!'
같이 오신 건설업 관계자의 부러운 함성이 들린다.
중국은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는 길
버스를 타며 조금만 가면 만리장성이라고 한 지가 벌써 3시간도 넘었다.
조선시대 사신들은 이 멀고 먼 길을 어찌 다녀가셨을까?
낮은 구릉과 끝없는 평야지대를 달리고 나니 드디어 산이 보인다.
중국의 전통가옥
저 산 능선을 따라 만리장성이 펼쳐저 있다.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석상의 조각 솜씨가 뛰어나 자세히 보니
만리장성 산해관의 조각상을 모조한 석상이다.
그 옛날 이와같은 덩어리의 단순화를 어찌 이루었을까!
세부묘사에 집착하지 않고 커다란 형을 육면체 모양으로 해석하여 전체적으로 힘있는 느낌을 준다.
불교사찰의 구조가 워낙 특이하다.
그 옛날 종교적 수도처에서 이제는 관광객을 고려한 기복의 도구로 전락한듯도 하지만
관음보살상을 외부로 노출하여 제단을 마련한 것이 특이하다.
옛 중국의 심원한 불교사상은 찾을 길 없고
폐가처럼 공허한 사찰엔 기복의 장사치만
이데올로기의 허구에 한숨 쉬며 뒤돌아보니
허리굽은 노파의 잔주름에 쌓힌 무상한 세월
천하제일관문
중국 만리장성의 시작이다.
이곳 산해관은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만리장성 북쪽은 북방민족이라 하여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러고 보면 심양, 금주 등은 모두 고구려의 옛 영토이기도 하였으며, 여진족이 자리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천하제일관문.
서체의 강대한 위용은 잔기교를 거부한다.
서체의 느낌 - 다만 홀로 포효할지니 거추장스런 장식들은 모두 비켜라
서체를 감상하다 보니 일행을 놓쳤다.
어디로들 간 것인지 만리장성 끝닿은 곳까지 발돋음하여 훝어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홀로 산해관을 들어섰다.
산해관 출입을 허락한다는 옛 관리의 업무를 상술로 이용하는 중국인. 과연!
만리장성 산해관 통관증
만리장성의 시작은 해안에서 부터이다.
고구려, 여진족, 발해 등 북방민족의 침략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증거물이기도 하다.
만리장성의 초입에 서서 당나라와 고구려의 옛전투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무수한 설화가 쌓인 산해관 위에 서서 눈 아래 풍경을 바라보니
옛 영웅들의 함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연계소문, 설인귀,당 태종이여
근대 한국동란의 참전으로 이 장성을 넘었을 숱한 한족들이여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단지 이름만 기록으로 남았구나
검은 성곽의 차가운 돌에 손바닥을 대고 묻는다.
역사의 흐름 앞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를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부질없는 분별이 스스로 부끄럽다.
역사는 지금도 흐르고
어쩌면 적으로 마주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곳에 한중교류의 현장으로 함께 모였으니
새로운 물결이 밀려들어 맑은 흐름을 이루는 역사의 장
다시금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연에서 > 여행,사진,글,기타(trip)'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의 제주도 (0) | 2012.05.26 |
---|---|
한중교류 3 - 금주의 야시장과 필거섬 (0) | 2012.05.18 |
한중교류 1(금주시 제 4중학교) (0) | 2012.05.17 |
[스크랩] 김성로화백님과 함께....실미도에서 (0) | 2012.05.16 |
시가 바다에 빠진 날 (0) | 2012.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