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4)
박 정 은
새벽잠을 설친 탓에 비몽사몽으로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그들이 따나자마자 잠옷인 채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꿈속인 것처럼 다시 뻐꾸기가 울었이 떨렸다. 죄를 지은 적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모르는 새 어떤 일에 얽혀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의식 밖으로 비어져 나와 발이 제대로 땅에 닿지 않을 만큼 허둥대게 만들었다. 날 벼락같은 경찰의 호출로 평정심을 잃은 채 구원을 요청하듯 외부로 출장중인 남편과 어렵사리 연락을 취하고 파출소 앞으로 향했다. 그 곳으로 가는 동안 남편이 와 있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내내 떨면서 향했는데 남편은 이미 와 있었다. 아주 불쾌한 표정이 역력한 남편은 얼굴 근육을 심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 두 분을 고소한 분이 이웃 번지에 사시는 윤, 시, 내라는 분인데 한 번 고소 내용을 살펴보시죠. ”
그녀는 남편에게는 폭행죄로 나에게는 안면방해죄와 폭언죄를 씌워 각각 다른 사건으로 우리 부부를 고소해 놓고 있었다. 이웃간의 감정싸움이라고 생각하는지 경찰은 화해를 권유했다. 남편의 폭행죄에 대한 고소장에는 엑스레이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외부인의 폭행으로 인한 고소인 애완견이 다리뼈에 금이 가 사주간의 동물병원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휘갈겨진 진단서였다.
“ 이웃간인가 본데 웬만하면 서로 화해하시고 의좋게 지내셔야죠. 감정적인 대립은 더 큰 감정을 불러오고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다보면 겉잡을 수 없게 됩니다. 하긴 경찰생활 십수년만에 개다리에 금이 갔다고 고소하는건 첨 봅니다. 하지만 자식처럼 아끼는 개라니... ”
자식처럼 아끼는 개라니...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가 언제부터 자신의 개를 그렇게 아꼈는지. 그녀의 집에선 거의 밥이 지어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일상이 깨져버린 그녀의 집에선 더 이상 일상의 궤도를 돌며 살 수 있는 것들이 사라졌다. 아름다움과 상상의 세계에 빠지게 했던 어항의 물고기도, 우아한 털빛을 자랑하며 인간의 허영심을 대신 표출해 주었던 개들도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살아낸 그녀의 개는 우리 집에서 나오는 밥냄새에 자존심을 허물어뜨리고 뒷문에 기대어 최대한 가녀린 소리로 밥을 구걸했다. 털이 마구 엉킨 더러운 그 개에겐 오로지 생명을 구할 밥 한끼를 구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처럼 보였다, 주인의 애정을 구하며 재롱을 피우던 그 옛날의 영화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슬픈 메시지는 말하는 인간이 무수한 형용사로 전달하는 것보다 몇 배나 가슴 아프게 했다. 며칠이 지나도 한 끼나 겨우 얻어먹을 수 있을까? 주인에게 잊혀진 만큼 더러운 털을 가진 그녀의 개는 동네를 온통헤집고 다니며 쓰레기들을 찾으러 다녔다. 생각 날 때마다 수고로움을 괴이치 않고 그녀의 개에게 먹이를 주었지만 그 개는 굶주림에 지질려 있어서 아무리 많은 먹이를 주어도 만족하지 못했다. 늘 또 다른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쉴 새 없이 주변을 떠돌아 다녔다. 굶주림이 공포로, 그 공포가 절망으로 그 절망은 다시 분노로 변하여 밤이 되면 적의를 드러내며 밤새 쉬지 않고 짖기만 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나는지 며칠 밤 내내 계속 짖어는 그너의 개에 우리 식구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어느 날 밤늦게 퇴근해 돌아오던 남편은 자신을 향해 으르렁 거리는 그녀의 개에게 돌진했다. 그 동안 밤마다 불면의 고통을 주었던 그 삐쩍 마른 작은 개에게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남편의 성난 발길질에 그녀의 작은 개는 멀리 나가 떨어졌다. 요란한 개의 비명과 함께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펴보던 그녀는 의외로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그녀가 자신의 개에게 먹이를 주던 나의 수고를 알기에 그렇게 너그러워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느 새 그녀는 우리를 방심하게 한 뒤 조용히 음모를 구미고 있었던 것이다. 지독하게 자신의 개를 사랑하는 애견가로 돌아와 있는 그녀의 자필 고소장을 받아든 내 손은 또 다시 떨리었다. 그녀가 요구한 털 복숭이 개에 대한 병원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그리고 차후 있게 될 휴유증까지 포함함 합의금 오십 만원은 기실 지나친 것이었다. 잡종견인 그 개 자체의 값이라야 몇 만원에 불과할 텐데 사람 친 것보다 더 비싼 값이라며 남편은 합의 하기를 거부했다. 더 이상 그녀와 얽히고 싶지 않은 나는 그녀의 억지서런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자고 하였고 남편은 이런 나를 비난하며 세상을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며 급기야는 나와 격렬한 언쟁을 하였다. 인신공격하지 하며 서로에게 화살을 쏘아대던 우리 부부는 얼마 뒤 냉정을 되찾앗을 때 이런 것도 그녀가 계산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의 교활함에 새삼 소름이 끼쳤다.
나에 대한 혐의로 제시한 증거물들 - 내가 그녀에게 한 욕설이라고 녹음된 체잎 - 은 증거 불충분으로 고소가 성립되지 못했다. 테잎에는 희미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으나 제 삼사가 듣기엔 무슨 소리인지 누구의 음성인지 인식할 수 없는 불분명한 증거였다. 자친하면 무고죄로 고소 당할 수도 있다는 경찰의 충고가 있어서인지 그녀는 우리가 파출소를 나간 직후 바로 뒤에 나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고 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해 씨근덕거리는 남편을 달래어 상의해보겠다고 결정을 유보시키고 파출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우리를 맞닥뜨린 그녀는 어떤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파출소에서 돌아오는 내내 남편에게 냉정해지자고 달래고 애원하던 내자신이 너무도 태연한 그녀를 보자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 대채 그 개값이 얼마요? ”
“ 서류를 보셨을 텐데요. ”
“ 이 양반아, 개 값이 얼마냐니까? 무슨 서류에 개값이 나왔어! ”
팔짱을 낀 그녀는 세가 눌리는 기색 하나 없이 붉으락푸르락 화가 곧 폭발 할 것 같은 남편에게 당당하고 태연히 맞섰다.
“ 그렇게 아끼는 비싼 잡종견을 왜 그렇게 매일 굶겨 쓰레기를 뒤지게 하는데? ”
그녀에게 금방 주먹을 날릴 것 같은 남편을 막아서며 내가 대신 그녀에게 외치자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우리 부부를 쳐다보았다. 너희 둘쯤은 아주 쉽게 처치할 수 있다는 오만한 표정이었다.
“ 밥을 굶기든 먹이든 그건 내 사정이고, 나한태는 정신적으로도 값도 따지지 못할 만큼 소중한 개인데요, 그런 문제까지 이 자리에서 일일이 설명해줄만큼 나 한가하지 않아요. ”
그녀는 남편에게 더욱 약을 올리려는 것 같았다. 그녀의 고도 심리 전술을 간파해낸 나는 남편의 등을 억지로 집안으로 떠밀었다.
“ 난 한 푼도 줄 수 없이니 그렇게 알아. ”
남편은 집안으로 들어가며 그녀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나에게 오금을 박았다. 더 이상 그녀와 남편이 대적하다가는 단순하고 성질 급한 남편이 그녀의 전술에 말려들 것이 뻔해 보였다. 내가 다 해결해 보겠노라고 귀엣말로 달래어 남편을 들여보내고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윤시내 이 여자를 어찌할까. 머릿속으로 그녀와 대적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보려 했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노려보든 말든 비웃음이 가득 든 얼굴로 그녀는 앞으로 내가 어찌 할 것인지 훤하게 꿰뚫어 보는 듯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교활한 얼굴 표정에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을거란 판단이 섰다. 나는 그녀와는 달라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밑바닥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그녀의 양심에 호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 언니, 대체 내게 바라는 게 뭔데요? ”
“ 바라는 거, 그거야 고소장 그대로지. ”
“ 언니, 그러면 해결이 안되죠. 언니의 본심이 대체 무언지 내게 알려 줘봐요. ”
“ 언니 언니 하지 말아요. 언제 나를 그렇게 언니 대접 했다고... ”
“ 내가 언제는 언니 대접 안했나요? 언니가 시누 대접 안했지요. ”
내 강력한 항의에 그녀는 잠시 움찔했다. 그녀에게 양심이 있다면 내 말을 아주 부정하지는 못할 것인데 그녀는 다음 말을 쏘아댔다.
“ 시누는 뭐고, 언니는 뭐예요? 사실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요.? ”
그녀는 애써 피해 왔던 오빠와 나의 원천적인 관계까지 들먹이며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 애썼다.
“ 시누 올케 사이든 아니든 우리가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더구나 이웃에 살면서, 개 때문에 경찰에 고소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나요? ”
그녀는 내 입에서 혹여 고아원 이야기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인지 먼길로 돌아가려던 자신의 의도를 버리고 성급히 오빠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 오빠 있는 곳을 알잖아요? 왜 내게 말해주지 않는 거예요? ”
“ 오빠 있는 곳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오빠 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를 고소했단 말이예요? ”
“ 그 문제하고는 별개예요. 내가 무슨 오빠 연락처를 알기 위해 위협 수단으로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하는 것 같군요. 천만에요. 이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시누에게 오빠가 필요할 것 같아서 하는 얘기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오빠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을 시켜줄지... ”
교활한 암쿄양이 같으니라고.
오빠는 행방을 감추기 전, 우리 집에 들렀었다. 그가 우리 집에만 들른 것이, 마침 그녀가 집에 없어서 우연히 우리 집에 들렀었다. 그가 우리 집에만 들른 것이, 마침 그녀가 집에 없어서 우연히 우리 집에 들른 건지 그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우리 집에만 들른 건지 알 수 없었다. 전부터 가출을 빈번하게 하던 오빠가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들른 후, 전에 없이 오랫동안 연락이 없이 행방을 감추었다.
그날 오빠는 내내 소리 없이 울기만 했었다. 남자의 울음은 여자의 울음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자의 절망의 노래, 측은하고 슬프고 무거운 그런 것이 절절히 묻어 나오는, 듣고 있기가 어색하고 마주 하기가 두려운 그런 것,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슬픈 운명의 줄을 웃으며 타고있는 광대의 눈물 같은 것이었다. 여자의 눈물이 슬픔의 표면적 전부를 보여주는 더 이상 감출 것도 없는 것이라면, 남자의 눈물은 그가 드러낸 슬픔 이면에 더 큰 슬픔의 광맥이 끝없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은유의 그 것이었다.
오빠는 단지 그렇게 울다가 갔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그녀는 오빠의 마지막 행적이 우리 집에서 멈췄다는 이유 하나로, 어느 날부터 우리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들만 집에 있을 때도 거리낌없이 우리 집에 들어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남편 수첩과 내 수첩을 함부로 가져갔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던졌다. 집안의 메모지까지 살피고도 성이 안차 쓰레기까지 뒤졌으며 전화국에서 우리 집으로 걸려온 전화 번호내역까지 빼내었다. 그날 그녀와 우연히 전화국에서 마주쳤던 학부형에게서 뒷날 들은 이야기였다. 내 주민등록 번호를 자기 것인 양 감쪽같이 외워 직원에게 내 행세를 하면서 전화 번호를 뺴내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고 했다.
사실 그녀든 나든 이 곳에서의 행동반경은 아주 좁았다. 인근 마을 어른 전부가 같은 학교 학부형이라고 할만큼 전교생이 이백명쯤되는 유일한 학교가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비록 초등학생이 없다 하더라도 이웃집에 한 학부형이 살고 있으면 그들을 통해서 누가 어디에 살고 누구의 엄마며 누구와 친하게 다니는지 서로를 훤하게 다 알게 된다. 또 작은 소문도 삽시간에 퍼졌으며 소문의 속성상 곧잘 변질되어 당사자를 난처하게도 했다. 이런 지역적 여건으로 유별난 그녀의 행동이 누군가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던 것이다.
“ 준이 아빠, 아주 집을 나갔다며? ”
“ 아니에요, 출장 갔나보던데요. ”
집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데 입소문이 더 빠른 탓에 오빠의 가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사실을 확인하려 들었다. 유일한 이웃인 내가 강하게 부인을 하였는데도 어쩐지 소문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녀나 나 외에는 오빠의 가출 사실을 알 리가 없었으며 나는 그 소문의 진위를 물어 올 때마다 애써 부인해 주었는데 소문은 자꾸만 퍼져 갔다. 그런데 소문의 진원이 알고보니 그녀 자신이었음을 누군가의 조언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가 스스로 퍼뜨리고 다니는 소문 내용은 내가 오빠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내 남편이 알게 될까바 오빠를 몰래 도망가게 했다는 그럴 듯한 연사였다. 자신은 나와 오빠가 친사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무련 혈연도 아니였으며 오히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을 숨기려고 다른 이와 결혼을 했고 교묘하게 집까지 옆으로 옮겨와 계속 관계를 이으려다 배우자들에게 발각 날 위험에 처하니까 자기 남편이 몸을 숨기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는 삼류 소설같은 이야기가 그녀에 의해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없는 소문을 알게 된 남편은 점점 그녀에게로 향하는 분노의 감정을 참을 수 없었는지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우리 부부는 왜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끌여들였는지 무척이나 후회하고 있었는데 얼토당토 않는 추문까지 등에 붙이고 다니려니 억울하다 못해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다. 오빠네가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시작된 소용돌이 속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일일이 해명하기도 싫은 스캔들로 낮이 부끄러워 밖에 다니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그녀 스스로 낸 그럴 듯하게 꾸며진 추문이 아니더라도 평소 그녀의 이상행동과 자랑할 것도 감출 것도 없는 집안 내력이 속속들이 밝혀져 다른 이들 입방아에 오르는 것 자체가 남세스러운 일이었다. 그녀가 떠들지만 않았으면 그녀외 남편이 나와 사촌간이거나 그녀의 남편이 집을 나갔거나 아무도 모를 타지에서 그녀가 일부러 이런 저런 소문을 내고 다니는 것이 마땅찮은 일이었는데, 게다가 오빠와 나의 추문이라니...
그들이 이사오기 전, 너무나 고적하여 누군가가 이웃에 살았으면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바램이 얼마나 감상적인 사치였는지 그들이 이사온 후부터 하루하루 후회하지 않을 떄가 없었다. 어느 날은 오빠에게 왜 하필 우리 집 근처로와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고 원망을 하였더니, 오빠는 한숨을 내리 쉬고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이 곳으로 이사오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고 했다. 오빠는 자기 아내와의 관계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보고자,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전원에다 친척이 이웃에 사는 이 곳에 오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오빠가 그녀와 사랑에 빠져 있던 연애 시절, 거래처 여직원이었던 그녀는 오빠에게 늘 따뜻한 감동을 주었다. 계모 밑에서 살뜰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오빠는 겉으로만 강해 보였지 가슴 한 쪽에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항상 커다랗게 자리했었다. 친 엄마와는 달리 어렵고 차가운 새어머니, 겉으로만 맴돌던 그에게 어머니로서의 할 일을 의무적으로만 해내는 새어머니, 따뜻하고 포근한 정을 느끼게 해주지 않았던 새어머니 슬하에서 오빠는 가슴 한 쪽이 늘 비어 있었다. 그런 오빠에게 그녀의 애틋한 관심은 오빠의 오랜 외로움을 봄눈 녹이듯 하였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랑이란 거구나 이런 것이 바로 관심이요 애정이란 것이구나 하며 난생 처음 받아본 여자의 사랑에 오빠의 가슴은 따뜻하게 덮여졌다.
그런 탓에 결혼한 뒤 알게된 그녀의 거짓말에도 오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게된 배경에 초점을 맞춘 이해심 많은 오빠는 오히려 그녀에 대한 연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차지하려는 마음고 어릴 적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 있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나름대로의 분석으로 더욱 그녀에 대한 보호본능이 발휘되었다. 현란한 외모의 그녀 안에 그토록 큰 슬픔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역설의 미학이 작용하여 오빠를 그녀에게 더욱 그녀에게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아내가 직장으로 출장지로 끊임없이 확인전화를 하는 통에 회사 업무에 지장이 생겼어도 사랑 때문이려니 했던 오빠였다. 퇴근길에 도로가 정체되어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녀는 안달하며 의심의 눈길로 오빠를 추궁했어도 오빠는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려니 했다. 오빠는 그녀가 의심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바심을 내며 미리미리 행선지를 밝히려 했지만 직장일이 일정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갑작스런 일들이 생기고 연락할 틈도 없을 만큼 촉박한 일정에 쫒길 때가 있기 마련이었다. 또 정확하게 오빠일이 맞춤하게 되면 너무 정확해서 의심하게 되고, 미심쩍으면 미심쩍어서 그 부분이 명확해 질 때까지 오빠를 의심했다.
오빠는 그런 그녀의 이상 행동이 병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남편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만 여겼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남편의 행적을 직장동료 상사 가릴 것 없이 확인하는 그녀 때문에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오빠는 문제를 직시하지 못했다.
수 삼년이 흐르면서 그녀의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오빠가 직장에서 일을 보기 힘들 정도로 잦은 전화확인은 물론이고, 성이 풀리지 않으면 불현 듯 나타나 오빠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며 소동을 일으켜 아수라장이 되게 하는 통에 오빠는 직장에서 수치감에 고개도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승진이고 장래 희망이고를 떠나 하루하루 사는게 고역이었던 오빠는 지방에 있는 연구소로 자원했다. 남들은 지방을 기피하여 어떻게든 본사에 남아 있으려 하는데 오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아무도 모르는 지방 근무를 자청하여 내려갔다.
그녀의 소원대로 지방 연구소는 너무나 작아 행동반경이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로 뻔한 곳이었고 사택까지 그 안에 있었으므로 오빠 생각으로는 그녀가 이제 남편을 의심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그 병은 의심을 만들어서라도 하는 병임을 그제서야 오빠는 깨달았다.
날로 심해지는 그녀의 횡포는 이제 오빠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오빠를 두둔하는 연구소 소장 이하 같은 연구원을 비롯해 부하직원에게 까지 미쳤다. 그들의 뒷조사를 통해 비리혐의를 고발, 그래봤자 그녀가 잡아낸 비리라고는 술집에서 술 마시고 술집여자와 하룻밤 외도한 것이었는데, 이런 따위의 혐의를 캐내 본사에 모든 사실을 알려 모두 매장시키겠다고 협박전화를 일삼았다. 그 곳에서도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오빠는 결국 사표를 내고 집에서 가출을 시도했다.
직장을 여러군데 옮겨 다니고 집을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불안정한 생활을 반복하는 오빠의 삶은 지옥 속이었다. 사랑을 확인시켜 주면 될 거라고 속을 뒤집어 보이듯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는 오직 당신뿐이라고 누누이 외치고 외쳤건만 나날이 의심만 키우며 그녀 자신은 물론 전도유망했던 자기 남편의 삶까지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오빠의 평생 소원은 한 가지, 단 하루라도 평범하게 사는 거라고 했다. 출세도 돈도 필요 없고 오로지 단 하루라도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는 오빠에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는지 미지수의 나날이었다.
근무하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사라진 오빠가 마지막으로 우리집에 들렀던 사실을 아이들을 통해서 알아낸 그녀가 화살 시위를 우리에게 겨누고 있는 거였다.
“ 그깟 오십만원 내줄테니 터무니 없이 굴지 말아요. 오빠가 없어진 게 누구탓인데, 누구한테 뒤집어 씌워요.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 오빠 있는 곳을 알면 내가 당장 찾아가서 따지고 싶은 심정이예요. ”
침착하게 그녀를 설득시키고 그녀의 진심을 이끌어내고 싶었는데 그녀의 교활함에 부아가 끓어올라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다음날, 남편 몰래 파출소에 찾아가 그녀가 원하는 오십만원을 건네주고 고소를 취하시켰다. 경찰은 살다살다 별 우스꽝스런 일을 다 본다는 식의 웃음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이없고 창피스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듯 한 내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여봐란 듯이 온갖 장신구를 매달고 와서 당당하게 그 돈을 받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녀의 가식과 뻔뻔스러움에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느껴졌다.
파출소 사건이 해결된 후 새벽마다 이어지던 그녀의 전화 공세도 없어지고 우리집과 그녀의 집에는 예전부터 아무일이 없었던 듯 조용하기만 했다. 걱정이 있다면 그 동안 새벽에 계속되었던 그녀의 전화공세 시간만 되면 저절로 깨어나 전화가 울리는 환청이 들린다는 것 뿐이었다. 마치 이런 평화가 계속되는 것이 불안하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스스로 면역 체계를 단단히 하려는 것 같은 이상 심리 현상이었다. 그녀에 대해 신경을 끄고 살고 싶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녀와 아이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전처럼 가 볼 수도 없는 처지이므로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의 집을 살펴보아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과 들락날락 외식도 하고 할인점도 다녀오는 듯 싶었다. 조금 지치고 외로워 보였지만 별다른 일은 없어 보였다. 남편도 시간이 지나자 다소 누그러졌는지 삼개월이나 소식 없는 오빠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하였다.
“ 대체 당신 오빠는 어디로 간다고 했소? ”
“ 몰라요. 우선 어디라도 가서 잠을 실컷 자고 난 뒤 결정하겠다고 햇으니까요. ”
“ 사람도 원, 그렇게 피하고만 있으면 해결책이 나오나. 정면대결을 해야지. ”
의사가 분명하고 직선적인 남편의 성격으로는 오빠의 우유부단함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무나 뻔한 답을 갖고 있는데도문제를 풀지 않고 시간만 끄는 오빠의 처신이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 이 판국에 잠이라니... 쯧쯧. ”
“ 그동안 얼마나 잠도 안재우고 고문을 했으면 그럴까요. ”
오빠를 두둔하는 내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지 남편은 반론을 펴지 않는다. 얼마동안 그녀의 집요한 공세로 잠을 설쳤던 종전의 경험 때문에 당자였던 오빠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눈치였다.
오빠는 늘 핏발이 선 눈을 하고 있어서 주변에서 걱정을 할라치면 안질환 때문이라고 둘러댔었다. 피곤한 기색에 충혈된 눈, 마를 대로 마른 어깨와 야윈 뺨이 밤새도록 아내에게 시달림 당하느라고 그렇게 된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새벽이 올 때까지 피의자인 오빠는 하루 일정을 반복 진술하고 그 진술 중에 조그만 틈새라도 보이면 추궁 당하고 잠시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해명해야 했다. 방심하거나 졸음이 몰려와 엉뚱한 대답이라도 하면 그녀는 칼까지 들이대며 그녀의 의심이 풀릴 때까지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날밤을 세우다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 그렇게 밤새도록 오빠를 고문한 그녀는 남편을 출근시킨 뒤 두꺼운 커튼을 쳐놓고 한밤중처럼 오전 내내 잠을 잤다.
게다가 그녀는 점점 예측 불허의 난폭한 행동을 일삼았다.
어느날 저녁 무렵이었다. 우리 집과 그녀의 집 사이에 있는 소각로에서 쓰레기를 태우며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도 회식이 있는 날이라서 오랜만에 저녁노을을 한가로이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다. 평소 그 시간이면 저녁밥을 짓느라 밖을 내다볼 틈도 없이 분주할 때인데 오랜만에 점점 어두워져 가는 한적한 시골 풍경을 감상하게 되어 마음으로 충족함이 스며들던 참이었다.
조용한 사위를 깨뜨리며 요란하게 오빠네집 대문에서 누군가 뛰쳐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슴프레한 저녁 무렵이어도 오빠 모습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다급하게 뛰쳐 나오는 오빠에게로 다가갔다. 어둠속 먼 거리에서도 신발을 신지 않는 오빠의 맨발이 도드라져 보엿고 내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시 어느 쪽으로 갈 건지 두리번거리다 산 쪽으로 향하였다. 다시 오빠를 부르며 다가가니 머리 쪽은 온통 물을 뒤집어 쓴 채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급하게 뛰쳐나온 오빠의 모습이 절박한 위험에서 도망쳐 나온 듯 싶었다.
추위 때문이라기 보다 어떤 공포감에 온 몸을 떨고 있는 듯 보였다. 추위를 느끼기엔 이른 날씨였다. 오빠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꾸 산쪽으로 가려는 오빠를 집으로 끌고 갔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주고 남편의 점퍼를 덮어 주어도 오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하게 있었다.
“ 오빠, 무슨 일이야? ”
“ ...... ”
“ 무슨 일이냐니깐? ”
“ ...... ”
내 채근에도 오빠는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싼 채 말이 없었다. 어디선가 찾아낸 남편의 담배를 건네 주었더니 오빠는 한숨부터 쉬었다. 평소 가사일을 잘 도와주던 편인 오빠는 그 날도 그녀를 달랠 겸 여기저기 집안을 청소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화장실 청소를 부탁했고 오빠는 기꺼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화장실로 옮겨가 타일이며 욕조며 열심히 닦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변기를 청소하려고 허리를 구부려 변기 안을 솔로 문지르는데 갑자기 그녀가 달려와 오빠의 머리를 변기 안으로 찍어눌렀다. 어찌나 갑작스럽고 내리누르는 힘이 세던지 변기 안으로 얼굴을 쳐박힌 채 버둥거리다가 간신히 빠져 나왔다고 했다. 방어를 할 겨를도 없이 급습을 당한 오빠는 무조건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얼마 전에도 갑자기 아이들과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며 같이 죽자고 달려들어 겨우 막아내고는 한 숨 겨우 돌렸었는데, 이젠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다고 했다. 시골집에서 올라오던 날 고속도로에서도 갑자기 핸들을 트는 통에 식구가 몽땅 죽을 뻔한 일등 그녀의 히스테리가 날로 심해져 오빠 자신은 물론 아이들 생명에도 위험을 느끼는 수위에 이른 것 같았다.
“ 오빠 그러지말고 올케를 정신 병원에 데리고 가보지 그래. ”
“ 그런 생각이야 하지만 병원 얘기만 나오면 다른 여자하고 살려고 자신을 정신병으로 몬다고 난리를 쳐. 아이들도 다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고...... ”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구는 오빠에겐 아무런 힘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녀에게 매일 숨 막히는 고문을 당하며 살고 있는 오빠에게 스스로 걸어가라고 하는 것조차 무리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너무나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려 자신을 방어할 힘조차 상실한 채 삶의 의지가 거의 소멸되어 가고 있는 오빠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 유망한 청년이었으며 성공에의 의지가 강렬한 청년이었던 오빠가 그렇게 자신의 고개도 들 수 없을만큼 의지가 소멸한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니... 오빠는 운 나쁘게 최악의 배우자를 만나 함정에 빠진거였다. 다른 경우와는 달리 결혼이라는 것은 잠시 빠졌다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상처가 온 생을 깊게 할퀴어버리는 치명적인 흉터를 남기는 속성이 있으므로 평생 오빠를 괴롭게 할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대다 삶을 마감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런 증세는 원인만 제거하면 정상인으로 살아 갈 수 있대. 원인은 배우자라는 존재 자체라는 거지. 배우자가 죽거나 떠나거나 해야 소멸된다는 거야. 그 방법 외엔 고쳐지기가 어려운 병이라는데, 모든 것은 오빠의 결단이 필요할 뿐이야. ”
“ 이혼? 그거 내가 하루에도 골백번 생각하는 낱말이지. 하지만 의부증이라던가 하는 병으로는 이혼이 법적으로 되지 않아. 그 것도 질병이라서 병이 났다해서 부부가 갈라서거나 하는 것은 도의적으로나 법적으로 부당한 일이라는 거야. 한마디로 고쳐서 살라는 거지. 병이니까? ”
“ 그러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던지... ”
“ 모르겠어. 어디 먼 데로 가버리고만 싶어. ”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빠 본인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어서 해결의 실마리가 영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주변에서 나서서 해결해 줄 사람도 없었다. 아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만한 생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 또한 한 다리 건너 사촌간일 뿐인데 나설 수도 없고...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