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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박정은)/단편소설(박정은) novel

함정(1)

 


                                                 함 정 (1)

 

                                                                                                           박정은

 


지붕위로 길게 자란 해바라기를 자르고 있었다.

씨를 뿌린적도 없는 야생 해바라기가 지붕 뒤로 불쑥 솟아 있는 것을 발견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동안 아무도 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올리며 씨를 맺을 때까지 키를 낮추어 은밀히 자라다가 어쩔 수 없는 생명의 힘에 의해 자신을 노출 시킨 것이다.

사방으로 자란 뿌리 끝을 삽으로 찍어내고 그 뿌리 주변 땅을 파내었다. 집의 기초를 위협할 수 있는 그 놈을 뿌리채 뽑아 내려고 했지만, 얼마나 억센 힘으로 땅을 붙잡고 있는지 도대체 끄떡도 하지 않았다. 뿌리부분은 포기하고 정강이 부근을 낫으로 찍기 시작했다.

어떤 풀이든 처음 대지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여리고 가냘프다. 그 가녀린 싹들이 미풍에 이리 저리 몸을 누일때면 가엾기까지 하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돌아보면 맨 손으로는 도저히 뽑을 수 없도록 악착같이 땅을 거머쥐고 굵게 자라 있다. 그 것들은 내가 언제 가녀린 싹들이었느냐고 그 동안의 동정심을 비웃는다. 그 음험한 웃음에 때로는 전율하게 된다. 그 전율은 가파른 산중턱에서 바위를 뚫고 자란 소나무를 보았을 때와는 다르다. 어쩌다 떨어진 자그만 솔씨가 단단하기 그지 없는 바위 속에 뿌리를 내려 바위까지 쪼갠, 그 강한 기상에, 그 불굴의 의지에, 경이로움과 숭고함을 느끼며 전율하게 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집 구조물인 돌이나 시멘트 틈에서 여리게 자라는 조그만 풀씨를 섣불리 얕보아선 안되는 지라, 봄날이면 추녀 아래의 영역에서 자라는 싹들을 모조리 뽑아 버렸었다. 특히 해바라기와 명아주와 아카시아 싹들은 아주 위험한 종류에 속해서 눈에 띄는대로 뽑았었는데, 뜻하지 않게 해바라기 하나가 지붕 위로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어 집의 기초를 위협하고 있었다.

힘들게 여러번의 낫질로 굵은 줄기가 거의 잘라질 즈음, 꼭대기에 달렸던 해바라기 꽃이 넙적한 얼굴을 지붕 위로 고꾸러뜨리며, 기왓장 하나를 밀어냈다. 내게로 떨어진 기왓장을 보고 어, 어 큰일이다 싶어서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모든 시간은 천천히 느리게 분절되어 내가 공포로 하얗게 납처럼 굳어져 가는 변화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 뻐꾸기가 울고 있어.”

잠결에 남편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어둠속에서 남편의 말을 그대로 따라해 본다.

전화벨을 뻐꾸기 소리로 바꾼지 한참이나 지났건만 남편은 잠 속에 빠져있을 때면 뻐꾸기가 실제로 울고 있다고 여긴다.

  “ 여보세요? ”

  “ ...... ”

  “ 여보세요? ”

  “ 나야. ”

  “ 누구? ”

  “ ... ” 톡.

수화기 저편의 통화음 소리를 들으며 안방 커튼을 젖히니 아랫집 창 무거운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나온다. 시계는 새벽 세시를 넘어서고 있다. 남편은 불빛 때문에 잠시 얕은 잠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유영하듯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창문을 드르륵 소리나게 열어 가래침을 뱉듯 ‘미친년’ 하고 낮게 읊조리며 창을 닫았다. 그녀가 알아들었는지 요란스레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얼굴을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얼른 커튼을 닫았다. 잠깐 동안의 작은 소동에도 개들은 소란스럽게 짖어댔다. 머리맡까지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간 밤의 취기로 남편은 밖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곯았고 이로 인해 내 잠은 더 멀리 달아났다.

전에는 어쩌다 한 밤중에 전화를 걸어 남의 잠을 깨우더니 요즘은 매일 밤마다 전화를 해 온다. 그녀의 남편이 행방을 감춘 이후 화살이 내게로 향해진 듯 하다. 오늘 새벽엔 남편이 만취 상태로 잠이 들었기에 다행이었다. 며칠간 계속된 그녀의 전화공세에 우리 부부는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벼르고 있는 남편이 폭탄처럼 그녀에게로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 아무 것도 모르고 잠속에 빠져 있었다.

그녀 남편의 마지막 행적이 우리 집이었음을 어떻게 알아내고는 내게서 동정심을 자아내려 애썼던 그 전까지의 태도가 표변하여, 오늘의 결과가 마치 나 때문에 일어난 것 인양 내게로 모든 원망을 돌렸다. 그녀에게는 그런 원망이 터무니 없다거나 오해라거나 하는 어떤 변명이나 항변도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녀 속에 들끓는 분노를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 그녀가 우리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것도 한편으론 이해가 갔지만 석달이 넘도록 계속된 그녀의 집요하고 은근한 공격을 받아내는데 이제 지쳐버렸다.

우리는 벌써부터 인내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녀보다도 우리가 더 일찍 미쳐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복수라고는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 미친년 ”이라고 응수해 주는 것 뿐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내 사촌오빠였다. 촌수로 따지면 그녀는 사촌올캐이고 나는 그녀의 사촌 시누이인 셈이다. 하지만 오빠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촌간이므로 따지고 보면 남남일뿐 그저 이웃이라고 하는게 더 옳겠다. 그녀도 이런 고무줄 같은 촌수를 이용해 어느 날은 제 편한 대로 나를 시누이로 대접했다가 또 어느날은 이웃집 여자로 대한다.

말하기가 싫어서 줄줄이 제 아이 둘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올라올 때는 사촌올캐가 되고, 밥을 다 먹고 수저를 놓으면 방금 이사와 소개받은 이웃집 여자가 되어서 설거지는 물론 제가 먹은 밥그릇도 나를줄 모른다. 내가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와 물 묻은 손으로 커피까지 타다 주면 손님처럼 받아 마신다. 그리고는 앉은 자리 그대로 이런 저런 하소연만 하다가 제 집으로 내려간다. 돌아가는 그녀의 등덜미엔 나의 수고에 대한 감사 대신, 자신의 꾀가 대단해서 바보스런 나를 이용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오늘도 힘 안들이고 한끼 해결한 것에 대한 뿌듯함으로 가득차 있음을 느낀다.

신도시 아파트에 살던 우리는 아이들이 좀더 어렸을 때 시골생활을 해보기로 마음 먹고 신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 땅을 사서 이층집을 짓고 이사를 왔다. 별 내왕도 없었던 사촌오빠가 인사치레로 한 번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시골풍경에 반하였고, 이웃도 없이 고적함 속에 살던 우리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식상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우리집 옆에 둥지를 틀었다. 드문드문 집이 들어선 산밑 동네에서 그렇게 우리집과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이웃이래야 이층집인 우리집과 단층집인 오빠네 달랑 두집 뿐이었고 나머지 집들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이래저래 우리는 그들과 유일한 사촌간이었다. 촌수로도 사촌이었고 거리상으로도 통칭 이웃사촌이었다. 또 그 집과 우리집 아이들이 모두 같은 시골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학교에서 조차 같은 반 학부형이 되었다. 학교래야 한 학년이 한 학급뿐인 작은 학교여서 전교생의 학부형들도 서로를 뻔히 알고 있으므로 그 집과 우리가 서로 인척간임이 금새 알려지게 되었다.

게다가 친정고모가 남도에서 올라오시면 그녀와 나는 사촌 시누 올케가 되었고 쓰레기 문제 지하수 문제 집에서 기르는 개들 문제에 부닥치면 미묘한 이웃이 되었다. 이웃도 드문 시골의 적적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차 한 잔을 나누는 말벗이 되었고, 외출했다가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맞추어 돌아올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서로 아이들을 부탁할 수 있는 유일한 이웃 사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와 나는 그런 현재의 만남보다도 더 오래 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는 사이였다. 둘은 애써 그 사실을 모르는 체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체 하는 걸 그녀쪽에서 원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고 내가 그 사실을 경솔하게 떠올려 그녀가 내놓고 싶지 않은 과거를 먼저 아는체 하거나 굳이 확인시키는 일따윈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였다. 나는 철저하게 그 부분에서는 모른체 해주었다. 아니 진심으로 내가 그녀의 과거를 모르고 있을거라고 여기길 바랬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하등 좋은 적용을 할리 없고 부담을 느낄게 뻔했으므로 사촌 오빠의 아내가 된 이후 십 여년 동안 나는 그 사실을 철저히 모른체 해왔다. 내가 알고도 모른체 하기보다는 원래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음을 그녀가 확신하길 바랬다.

그녀의 남편인 사촌 오빠는 노처녀였던 친정고모가 뒤늦게 아들만 둘 딸린 홀아비와 결혼하면서 졸지에 나와 사촌간이 되었다. 그래도 워낙 어릴 때 맺어진 친척간이라 피가 섞인 친척과 다름이 없었고 이북 출신 아버지와 유일한 남매였던 고모였으므로 그들과 우리 형제들은 사이 좋은 친사촌들만큼 친하게 자랐다.

새엄마 밑에서 자란 가난한 집안의 둘째 아들인 사촌 오빠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머리 좋고 잘 생긴 외모로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의 기대주였다.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는 잘 자라 소위 일류대학까지 일사천리로 졸업하였고 일류 기업체에 특채로 스카웃될만큼 뛰어난 수재였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수재 아들을 둔 고모는 그 덕에 계모라는 주위의 부정적 이미지까지 벗고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오빠의 앞날에는 어떤 장애물도 존재지 않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쳇말로 전도 유망한 청년이었다. 일류 기업체에서도 두뇌에 해당하는 본사 기획실, 그 중에서도 첨단 사업을 기획하는 최일선의 부서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핵심 두뇌로 빠르게 승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도유망한 오빠가 곧 결혼할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계모인데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반듯하게 잘 키워냈다는 주위의 칭찬은 특히 아버지를 가장 뿌듯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 즈음에 친정 나들이가 부쩍 잦아진 고모는 아버지의 대견함과 부러움이 섞인 시선 속에 우리 어머니께 아들 자랑으로 입이 쉴날이 없었다. 부모의 온전한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해 놓고도 지방의 시원찮은 직장에 겨우 목매달고 다니는 우리 형제들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터라 어머니는 고모의 자랑이 별로 달갑지 않아 하셨지만 고모는 자랑을 멈출 줄 몰랐다. 게다가 대단한 집안의 처녀와 결혼한다지 않는가. 혼기까지 놓치고 빌빌거리는 오빠들을 속이 터져라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에게 사촌 오빠의 결혼소식은 또 하나의 시새움 섞인 부러움이었다.

사촌 오빠의 결혼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더 고모의 아들자랑은 증폭되었다. 고모는 마치 사돈 될 집안 덕에 아들은 물론 자신까지도 신분이 상승되는 것처럼 흥분했다. 고모가 새며느리의 집안 자랑을 늘어놓고 간 날, 어머니는 입을 비죽이며 남이 힘들게 배 아파서 낳아 기른 아들을 거저 얻어서는 마치 다 제 공인양 떠든다며, 쌀 됫박에서 손바닥으로 우둠치를 싹 쓸어내리듯 고모를 깍아내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다.

결혼을 얼마 앞두고 사촌오빠는 가까운 친척들에게 자신의 신부감을 선보였다. 오빠만큼이나 매력적인 외모의 그녀를 만나본 집안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 폭의 그림같다고 그 예비 부부에게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사촌오빠와 그녀가 함께 있으니 그 주변이 다 훤해 보인다고들 했다. 오빠 한 사람으로도 빛나는 존재였었는데, 집안 좋은 처녀인데다 인물까지 오빠와 걸맞으니 시너지 효과는 두배가 아니라 서너배쯤 배가되는 듯 싶었다.

그런데 그녀를 처음 본 그 날, 나는 어쩐지 그녀가 낯설지 않았다. 그녀를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에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게 없었다. 그렇지만 그 느낌이 아주 잘못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가 흔하고 평범한 얼굴이었다면 만난 적이 없는데도 어디선가 마주친듯한 착각이 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가 그렇게 착각하도록 하지는 않을테니,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의 한 자락을 붙들고 내내 답답한 과거를 맴돌았다. 장막이 한 꺼풀 씌워진 듯한 그녀에 대한 흐릿한 기억 속에서 실체를 찾아내지도, 그 희뿌연한 기억에 대한 미련도 지워내지 못한채 사촌오빠의 결혼식이 다가왔다.

고모의 말씀대로 굉장한 집안티를 내려 했는지 남도에서 제일 화려한 호텔에서 결혼식이 있었고 고모의 손가락에는 신부측에서 보낸 다이아몬드 반지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 날도 고모의 자랑은 예외없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아파트와 자가용까지 혼수로 가져 왔다는 신부측이, 소문과는 달리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검소한 부자인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좋은 집안이거나 부자들 중에는 의외로 겉치레를 하지 않고 오히려 서민들보다 더 서민적인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모두 그런 쪽으로 해석하는 듯 싶었다. 오빠는 결혼식 내내 싱글벙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객들은 모두들 호박이 덩굴채 들어와 저런다고 한마디씩 축복의 말을 던졌다.

그들중에는 슬픈 표정을 한 사람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던 나의 단짝 친구였다. 친구는 슬픈 마음을 억누르며 오빠와 그녀의 화려한 결혼식이 진행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역시 오빠와 그림같이 잘 어울리는 신부를 보고는 기가 죽는 눈치였다. 친구를 위로해주기 위해 결혼식 중간에 식장 밖으로 나와 그동안 서로 보지 못한 사이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혹시 신부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지 않았느냐고 내게 물어 왔다. 이름도 얼굴도 그 애임에 틀림이 없다고 친구는 단정지어 말했다.

그랬구나.

친구의 확인으로 기억속에 드리워졌던 희뿌연 한 장막이 거두어지며 그제서야 그녀에 대한 명확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윤시내 그녀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던 듯 싶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모호하고 미묘했던 생각이 났다. 무언가 나를 피하려 한다는 석연치 않은 느낌의 실체가 확인된 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녀에 대한 의문이 풀리면서 그녀에 대한 실체가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드는 거였다. 어떻게 그녀가 오빠의 대단한 신부가 되어 서 있는지......


한국전쟁이 끝나고 십여년 뒤에 우리들은 태어났고 우리가 자랄때는 어딜 가나 아이들 투성이었다. 도시에서도 농촌에서도 집안에서도 동네 골목에서도 넘쳐나는 아이들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뿐 아니라 고아원에도 버려진 아이들로 가득했다. 그 곳에는 자매도 있었고 형제도 있었다.

넘쳐나는 아이들로 한 학년이 십 학급이나 되던 우리 학교에서도 한 반에 서 너 명씩 고아애들이 존재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떼지어 등교하는 그들은 비슷한 옷과 비슷한 책가방을 가졌고 거의가 영양실조로 찌들다 못해 부황으로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그애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사실 그 당시의 경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어쩌면 부모 있는 우리들보다 그애들의 행색이 더 나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아라는 선입견이 아니라면 그애들이 입었던 줄무늬 스웨터며 우리들은 먹어본 적도 없는 쿠키와 영어가 쓰여진 학용품들을 가진 그들을 우리가 부러워해야 했다. 육년 내내 할머니나 어머니가 여러번 커 가는 아이 몸에 맞추어 짰다 풀렀다 하여 나달해진 털실로 다시 짜 준 조악한 옷들을 입어야 했고 너 나 할 것 없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하얀 버즘이 피어 있었으니 우리가 그 애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애정결핍에서 오는 어떤 우울한 분위기가 있었고 무언지 주눅든 표정이었으며 똑같은 옷을 전부 같이 입는 통에 고급옷이라 해도 오히려 고아원 아이임을 증명하는 표식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윤시내는 고아원 아이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예쁘고 깔끔한 아이였다. 우리들 누구보다도 더 희고 고와 누구든 그 아이를 보고 고아원 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아원 아이라는 그녀의 처지가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그녀가 마치 동화속 소공녀라도 되는 듯한 상상에 빠지게 해 그녀를 미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했다.

고아 아닌 우리들보다 더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 탓에 시내는 선생님들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멀리하는 다른 고아애들과는 다르게 우리들은 자연스레 시내를 무리속에 끼워 주었다.

어느날, 우리는 시내를 따라 고아원에 가게 되었다. 옆집 친구집에 놀러가듯 그저 시내네 집에 놀러 간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떠도는 소문처럼 그 애가 정말 고아원 원장님의 감춰진 딸인지 소공녀처럼 귀족의 숨겨 놓은 딸인지 하는 의구심을 그 곳에 가서 직접 풀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난처해 하는 시내를 며칠이나 졸라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고아원 선생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데도 우리들을 데려가는 시내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워 보였다.

읍내에서 오킬로쯤 걸어가자 아래 마을의 올망 졸망한 집들을 거느리고 마을 언덕 위에 두드러지게 크고 높은 건물이 보였다. 초가나 함석으로 누추하기 그지 없는 마을의 작은 집들 사이를 지나 우리들 학교처럼 지어진 고아원 건물이 마을 뒤에 있었다. 검정색 콜타르 지붕과 검정 나무 판자 외벽으로 된 고아원 건물은 커다란 규모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 곳은 아이들이 살기엔 부적당한 곳 같았다. 우리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아래목과 맛있는 찌개 냄새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측백나무 울타리 안에는 학교 운동장 보다 조금 작은 마당도 있었고 여러채로 나누어진 건물이 그 용도를 달리하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기 보다는 군청이나 지서 같은 관공서 같았다.

시내의 안내에 따라 우리들은 본채에 이르기 전에 아버지라고 불리는 뚱뚱한 원장님을 먼저 만나 요식적인 절차를 밟아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어린 우리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절차를 통해 아이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본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들은 입구에서부터 주눅이 들게 되었다.

예상대로 건물안은 높은 천장과 많은 방이 용도에 따라 여러개로 나뉘어 있었다. 또 몇 번의 절차를 거쳐 시내가 속한 여자 어린이들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아들은 보모의 지시에 따라 모두들 방바닥에 책과 공책을 펴놓고 숙제를 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들을 바라보는 그애들의 시선이 너무나 차가왔다. 마치 비밀스런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한 동물처럼 우리에게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모를 만큼 그들의 표정은 표독스러워 보였다.  그렇잖아도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졸아들었던 우리들은 구경은커녕 화가 잔뜩 나있는 것 같은 그애들 때문에 몸이 뻣뻣하게 굳을 지경이었다.

그애들은 학교에서 우리들에게 당한 수모와 박대를 갚아줄 좋은 기회를 만난 듯 숨김 없이  적대감을 드러냈다. 우리들은 멋모르고 적진에 너무 깊숙히 들어가 위태로운 순간이 닥쳤음을 그제서야 알게된 포로들 같았다. 우리들은 두려움을 감추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를 썼다.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은 야수의 세계에서 적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적인 원장 아버지와 냉랭한 표정의 보모를 만나면서 시내가 어떤 비밀도 갖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평범한 고아라는 사실이 저절로 느껴졌다. 시내는 그 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하나도 특별하지 않았다. 왼손잡이 인 것을 빼고는...

아이들 만큼 냉랭한 보모가, “ 너희들 이제 가야지. ” 할 때까지 포로처럼 자리에 붙박혀 있던 우리들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발도 제대로 꿰지 못하고 우르르 밖으로 몰려 나왔다.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온 우리들은 고아원에서 멀어질 때까지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뒤에서 덮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각자 빠르게 뛰어 갔다.

이후 시내를 주인공으로 떠돌던 여러 가지 풍문들이 사라졌다. 마치 시내 주변에서 피어나던 안개가 거두어지자 최면에서 깨어난 우리들은 새삼스레 시내가 고아원 아이임을 인식하는 식이었다. 그 뒤 시내와 전처럼 어울렸는지 어쩐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년이 올라 가면서 다른 반이 되었고 진짜 부모가 시내를 고아원에서 데려갔다는 소문을 끝으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기억은 사실 뚜렷한게 없다. 어릴 적 모든 기억은 가공과 사실성의 경계성이 모호해서 꿈을 꾼 이야기인지 사실이라는 원료에 가공의 초콜릿을 덧바른 것인지 확실한 실체가 없는게 대부분이었다. 시내에 대한 기억도 그런 것 중의 하나였는데, 오빠의 결혼식장에서 시내를 기억해낸 어릴 적 친구덕에 간신히 그 끄트머리쯤에서 찾아낸 그림이었을 뿐이었다.


오빠가 결혼한 뒤 가끔 마주칠 때마다 신혼의 신랑에게서 보이는 여유로움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만날때마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표정뿐 아니라 행색도 어딘지 초췌해 보였다. 고모의 말씀에는 여전히 일류 대기업체 선두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신부는 음식솜씨까지 빼어난, 버릴 곳이 하나도 없는 보기 드문 여자라는데 그는 자꾸 마르고 초라해 보였다.

곧 이어진 나의 결혼으로 한동안 오빠 소식을 듣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나선 친정 나들이에서 놀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오빠가 사기 결혼을 당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오빠가 내색하지 않아 아무 것도 몰랐던 고모네 부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으나 까짓 사람이 중요하지 다른 무엇이 중요하냐며 모르는체 했다고 했다. 이미 아이까지 생긴 마당에 아내로서의 역할,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그녀를 새삼스레 문제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여겼고 무엇보다 당자인 오빠가 조용히 묻어두고 살기를 원하니 고모 부부는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아무 일 없었던 듯 모른체 지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오빤는 속으론 그녀가 부잣집 딸인양 생색내며 해온 호화 혼수품들들의 외상값과 월부금을 갚느라, 그 것도 부모님이나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죽이며 갚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드러냈어도 거래처의 여직원이었던 그녀에게 반해버린 오빠로서는 그녀와 결혼하려 했었을텐데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거짓말을 했던 것인지... 거짓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고 그 거짓을 그럴 듯 하게 만들기위해 또 다른 거짓을 불러들여야 하니... 그 끝없는 게임에 말려든 오빠가 결국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혹독한 댓가를 그녀 대신 치러야 했다.

그녀의 거짓은 끝없이 드러났다.

전문대 경영학과 졸업이라는 학력도 전수여상이라는 고교 학력 인정이 되는 변형된 야간 고등학교를 나왔음이 우연한 기회에 밝혀졌으며 오빠를 꼼짝없이 옭아맸던 임신도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끝없이 드러나는 그녀의 거짓이 모두 사랑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그녀의 말을 오빠는 그대로 믿어 주었다. 아니 믿고 싶어 했다. 그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어릴적 불우한 환경 탓이었을 거라고 애써 변명해 주는 오빠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가 보다. 그녀가 내민 미끼 때문에 그녀와 결혼하였다면 거짓이 드러난 마당에 말없이 그녀가 진 빚들을 갚느라 애쓰는 대신 이혼의 좋은 구실로 삼았을텐데 오빠는 그녀가 불이익을 당할까 전전긍긍하며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숨죽이며 엄청난 채무를 갚는데 온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또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게 했던 주변의 기대들, 그 중에서 인생의 첫출발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누구보다도 많은 축복을 받고 시작한 결혼이 무참하게 깨어지는 것이 가장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 사실을 알았을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부 사이의 복합된 정 때문에 그렇게 힘들면서도 그녀를 밀쳐내지 못했을 거란 추측도 해본다.

그런 곡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디에서나 당당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리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디에서나 숨을 죽이거나 어깨를 구부리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젊은날 자신의 잘못 때문에 평생동안 주눅이 들어 사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가 갖고 있는 범상치 않은 외모라면 그런 허물을 덮어주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값어치가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지도 모를일 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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