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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박정은)/단편소설(박정은) novel

헛꽃(1)

 

                            헛  꽃(1)


                                            박 정 은

 

 

1


흰순이가 죽어가고 있다.

세 놈 중 맨 꼴찌로 어미 뱃속에서 나와 제법 앙살도 부리며 살아남으려 애를 쓰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억센 두 놈들 틈에서 전의를 상실한 채 기운을 잃어갔다. 어미 젖꼭지에 매달려 안간힘을 써 보지만 이내 힘센 두 놈에게 깔리거나 떠밀려 가냘프게 울어댈 뿐이었다.

동물은 약한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달가워하지 않는 명옥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강아지를 보러왔다며 맨발인 아이를 앞세워 집안으로 들어선다. 명옥은 난감해진다. 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 이들을 몰아낼까. 남편까지 늦게 퇴근한다고 연락이 왔으니 적당한 구실이 당장은 없다. 적당한 구실을 찾을 때까지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어야 할 시간들이 명옥에겐 곤혹스럽다.

말갈기처럼 굵고 억센 머리칼을 모두 모아 앞이마 바로 위에다 핀으로 묶은 그녀가 길고 누런 이를 드러내며 명옥에게 호의를 보낸다. 그러나 명옥은 그녀와 무엇인가 감정이 어긋난 듯 사뭇 퉁명스럽기만 하다. 현관 입구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명옥을 제치고 그들 모녀는 안으로 진군하였고 그녀의 손에서 놓여난 아이가 신이 나서 “으으 아아”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거실에서 안방으로 영역을 넓혀서 온 집안을 휘저어 놓는다.

아이의 손에서 난장판이 되어 가는 집안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던 명옥은 얼마 지난 후에야 제 정신이 난 듯 종종 걸음으로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며 말리려 든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제동이 어려운 바퀴처럼 제 흥에 겨워 막무가내로 소리 지르고 집어 던진다. 아이의 어미인 그녀는 그런 아이를 말릴 의지가 없다. 단지 “쟤 봐, 쟤 봐”하며 입으로만 뇌일 뿐이다.

명옥은 갑자기 두통이 인다. 두 모녀를 몰아낼 방법은 없는가.

이 시골 동네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명옥네와 그녀네는 다른 이들이 농사 일로 논밭에서 일 할 동안, 텅 빈 동네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도 명옥은 그녀와 마주치면 마음이 어긋난다. 실내를 다 어질러 놓고는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마당으로 나간 아이가 채소밭에 들어가 채소와 풀들을 뜯어 입에다 우겨 넣는다. 아이에겐 마당에 있는 모든 풀들이 먹이감 이다.

한 웅큼씩 풀들을 뜯어먹던 아이가 개밥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손으로 집어서 개밥을 입에 넣는다. 동네개밥을  아이가 먹고 다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그 장면을 목격하니 명옥은 구역질이 난다.

“으, 으뜨.”

그녀의 아이는 감탄사처럼 큰 머리를 흔들어 어렵게 말(?)을 쏟아낸다.

바깥풍경은 아이의 말과 무관하게 햇빛 속에서 냉정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채 서 있다.

그들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갈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명옥은 마당에 남아 토마토 밑에서 풀을 매주기 시작했다.

그녀도 “이케, 이케.”하며 명옥을 도와 토마토 밭의 잡초를 뽑기 시작한다.

“아이나 보세요,” 하고 만류해 보지만, 그녀는 드디어 할 일을 만났다는 듯이 열심히 풀을 매준다. 구름도 없이 통과한 햇빛으로 그녀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명옥이 며칠을 걸려 해도 다 못 끝낼 토마토 밭 풀매주기를 단 한 시간만에 끝내고 다시 도와줄 일이 없나 살펴보는 그녀를 명옥은 외면한다. 자신의 일을 도와 주었음에도 고맙지가 않다. 오히려 그녀가 머무는 시간만큼 명옥 자신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함만 커진다. 어서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명옥의 영역에서 빨리 나가주길 바랄 뿐이다.

명옥은 그녀를 대할 때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싫다. 그녀로 인해 자신의 내부 속에 있던 부정적인 본질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자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명옥 자신은 어릴 때부터 늘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된 지금까지 명옥을 처음 본 사람이나 오랜 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이나 그녀에 대한 평가는, 늘 첫 인상처럼 착해 보인다거나 사람 하나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명옥은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 왔다. 항상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을 보이니 사람들은 명옥을 ‘좋은 사람’ 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명옥은 그녀와 마주치게 되면 정말 자신이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사람일까 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그녀가 명옥에게 어떤 잘못을 했다고 그녀와 마주하는 것 자체가 불쾌한지... 그녀의 도움에 명옥은 고맙기는커녕, 그녀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것 같은 알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이 인다. 그런 자신을 발견 할 때면 명옥은 지금껏 자신이 착한 여자라는 가면을 쓰고 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녀가 명옥의 집안 일을 열심히 거들어도 명옥은 한 번도 그녀에게 어떤 먹을 것도 권해보지 않았다. 다른 동네 분들이 잠시라도 명옥의 집에 들르면, 차를 끓여온다 냉장고 속 음료를 대접한다 수선을 피우며 환대를 하는데, 정작 자신의 집안 일을 거두느라 애를 쓰는 그녀에겐 인색하기 그지없다. 그녀와 마주 보는 것도 꺼려져 그녀가 묻거나 말 할 때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고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못들은 척 하면서 그녀와 가까이 서는 것에도 인색하게 군다.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가까이 있게 될 경우, 말할 때마다 유난히 긴 이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반찬 찌꺼기를 보는 것도 괴롭고 이상한 냄새가 풍겨나는 독특한 그녀의 체취를 맡아야 하는 것도 고약해 명옥은 될수록 그녀로부터 멀찍이 달아나려 애를 쓰게 된다.

그녀를 고귀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있지 않음에 스스로 반성하고 후회해 보지만 그녀와 헤어져서 느끼는 반성일 뿐, 다시 그녀와 마주치게 되면 명옥은 전날의 반성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본능처럼 그녀를 피하고 싶어할 따름이다. 그리고는 또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게 된다.

아이는 어버 어버, 하며 한 쪽 발에만 신을 신은 채 쏜살같이 대문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가 어서 집에서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가 없어졌다고 그녀에게 이르지만 “괜찮아요” 하며 명옥의 호들갑을 묵살하고 그녀는 계속 호미 질이다. 토마토 밑을 매주던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니, 이케 잎새기를 쳐주지 않으면 어떡해요!”

어둔한 말투로 토마토 열매가 잘 열리게 하려면 이파리를 따주어야 한다고 오랜만에 자신보다 모르는 이를 만나 신이 난 그녀가 아이에게 윽박 지르듯이 큰 소리로 설명해 준다.

처음으로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이사온 명옥은 그녀가 여러모로 선생일 때가 많다. 명옥이 마당 한 켠에 가꾸는 텃밭 농사를 다른 이들은 무심히 보아 넘기거나 어떻게 하는지 두고볼 심산으로 지나치는데 그녀만큼은 아무거리낌 없이 들어와 명옥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건네준다. 아무리 작은 텃밭이지만 태어나서 농사가 처음인 명옥에게 텃밭을 제대로 가꾸는 것이 점점 어렵다고 느껴졌는데 그녀의 조언은 꽤 유용했다.

그녀의 조언대로 토마토 잎사귀들을 대충 다 따주었다.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도 그녀가 큰소리치며 알려준 거라서 초보자인 명옥은 별 의심 없이 그녀를 그대로 따라 했다. 초봄에 모종을 사다 심은 뒤, 그대로 자연스레 자란 토마토는 무성한 이파리와 가지를 가진 작은 나무 한 그루였다. 그런 토마토가 줄기 꼭대기에만 잎사귀를 얹고 서서 앙상하게 변한 모습이 어딘지 기형적으로 보인다.

혹시 잘 못된 것은 아닐까, 저러다 기껏 잘 기른 토마토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점점 의구심이 드는데도 명옥은 그녀를 따라 토마토 잎사귀를 떼어 낸다. 모든 토마토가 다 그렇게 앙상해질 무렵, 지나가던 뒷집 아주머니가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다가왔다가, “아이고, 이게 뭐야!” 하며 비명을 지른다. 갈수록 무언가 잘 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던 참이었다.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잎이 아니라 곁가지를 잘라주어야 하는데 엉뚱하게 이파리를 다 떼어버렸다고 한다. 명옥은 앙상하게 변해버린 토마토 줄기를 붙들고 이를 어쩌나 하며 안타까움과 원망스런 마음으로 그녀 쪽을 돌아다본다.

그녀는 땀이 범벅이 된 채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다.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마구 욕을 퍼부으며 등을 떠밀어 버린다. 명옥은 지나치게 그녀를 야단치는 것이 또 미안하여 등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본다.

이 마을에선 그녀가 하나의 인격체이고 나이 마흔이 다 된 어른이고 한 아이 어머니이며 한 남자의 지어미임을 주권을 가진 한 나라의 시민임을 어느 누구하나 인정하지 않는, 마치 자신이 기르는 짐승처럼 나무라고 혼내주어도 도덕이나 법적으로 걸림이 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인권 사각 지대에 사는 치외법권적 존재다. 명옥은 자신을 도와주다 그렇게 되었다고 나무라는 아주머니에게 그녀를 두둔하려는데, 그녀는 명옥을 흘깃 보더니 이제야 아이가 생각난 듯 큰소리로 아이를 부르며 황망히 떠난다.

“저거, 인간 같지도 않은 게 모르면 잠자코나 있지, 무얼 아는 체야."

그녀가 가버린 골목을 향해 아주머니는 마구 고함친다,

명옥은 남의 일만 실컷 해주고도 물 한 모금 얻어먹지 못 한 채 욕만 듣고 가버린 그녀의 처지가 슬퍼서 울적한 심정이 된다. 한편으론 조상 대대로 자기들끼리 살아온 토박이 마을에 갑자기 끼어 든 명옥이네가 모든 마을 사람들 관심의 대상인데, 이 번 일로 마을 사람들에게 명옥이 그녀와 같이 웃음거리로 전락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자리한다.

그 아주머니는 장학지도 나온 장학사처럼 명옥이 기른 작물들을 하나 하나 둘러보고 살펴본다. 좀 전의 일에 부끄러움을 느낀 명옥이 어떡하든 만회해보려 자신도 모르게 아주머니 곁에 바싹 붙어 서서 지나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고 몇 번씩이나 머리를 조아려 대답한다.

다섯줄기로 받침대를 타고 말아 올라간 오이 밭에 이르자 그 아주머니는, “저런, 헛 꽃이 많이 피었구먼.”하며 중간 중간에 별 모양의 노란 오이 꽃을 떼어낸다.

“왜 모두 난대로 자라면 안 되는 걸까요. 토마토는 곁가지를 쳐주고 오이는 꽃을 솎아주어야 하고….”

명옥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려본다.

“아이고 그런 소리 말아. 그냥 생긴 대로 다 내버려 두어봐. 무엇 하나 먹을 만한 열매 하나 못 맺는다고. 거두고 키워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저런 것들이나 만들어 놓는다고.” 하며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손가락질이다.

명옥이 집안으로 들어가 냉장고 안의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나와 야외용 탁자에 내놓자 아주머니는 마치 당연한 대접이란 듯 음료수를 들이킨다.

명옥의 밭을 몇 시간 동안 땀흘리며 매준 그녀에게 주었어야 할 음료수를 엉뚱한 사람이 마시고 있구나 하며, 입에 묻은 음료수를 손바닥으로 훔치는 아주머니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아주머닌 궁금한 게 있다는 듯 화제를 명옥에게 돌린다.

“새댁은 아직 애가 없수?”

그 동안 그 사실이 무척이나 궁금했다는 표정의 아주머니께 명옥은 우울하게 대꾸한다.

“새댁은 무슨 새댁요,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요.”

명옥의 그런 짤막한 대답만으로도 모든 것을 다 짐작해버렸다는 듯 아주머니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더 놀다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아주머니는 명옥에게 손 사레를 치며 대문 밖 골목으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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