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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박정은)/단편소설(박정은) novel

함정(5)

 

함정(5)

 

박 정 은

 

 

 

 

뻐꾸기가 울었다.

난이 엄마였다. 같은 반 학부형인 난이 엄마는 오늘 학부모 총회에 다녀왔다며 한참동안 망설이다가 어이 없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아이들 담임과 학부형들이 회의를 하는데 그녀가 난데없이 그 자리에 없는 내 안부를 걱정하는 척 하더니 내 비밀 얘기라며 털어놨다는데 그 얘기가 완전 날조였다.

내가 학벌을 속이고 남편과 결혼했다가 이혼 당할 뻔 했으며, 어릴적 부모로부터 고아원에 버려진적이 있어서 성격이 이상하고, 자신의 남편과도 사촌간입네 위장하면서 이상한 관계를 계속하고 있어서 자신이 어디까지 인내하며 지켜봐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심각한 갈등에 빠져 고민하고 있음을 담임이하 많은 학부형들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얘기까지 늘어 놨다고 했다.

난이 엄마가 전해준 얘기를 듣는 순간 화가 나서 어찌 할바를 몰라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녀와 내 처지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얘기가 정말인 줄 알고 나를 이상한 여자로 생각할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이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을 어떻게 무마하고 나서야 하는지 막막했다. 일일이 해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그 동안 그녀에게 누가 될까봐 그녀의 치부를 아주 친한 이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는데도 배은망덕하게 그녀는 내 뒤통수를 느닷없이 가격해왔다.

오빠를 닮아서 똑똑하고 제 어미를 닮아서 훤칠하게 생긴 그녀의 아들은 줄곧 반장이다 회장이다 하며 학교에서 아주 돋보이는 아이였다. 그녀는 아들 덕에 학부모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그에 비해 제 어미를 닮아 못난 내 아들은 시골 학교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나 또한 내성적이라서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나마 가끔 가는 학부형 모임도 그녀와의 고소 사건으로 경황이 없어서 참석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그녀 때문에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원인 제공자인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부모 총회에 나가 내가 없는 기회를 틈타 내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것이다. 이 작은 시골마을에 퍼질 나의 부정적인 소문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다른 학부형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아이 담임 선생님에게는 어떻게 해명해야 하나... 내가 그렇게 피해 가고 싶었던 그녀라는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 정신 병원에 확 집어 넣어버릴까. ”

사실을 전해 들은 남편이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리하고 술수에 능한 그녀의 덫에 더욱 깊이 빠질 뿐임을 본능처럼 감지 할 수 있었으므로 냉철하게 사태를 지켜보자는 내 주장에 남편은 말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당장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녀의 말을 믿고 있는 사람도 많을텐데 밖으로 고개 들고 다닐 수도 없게 되었으니 그게 큰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어떠어떠 해서 꾸며낸 이야기라고 일일이 변명하며 다닐 수도 없고.... 이래저래 연기 잘 하고 모략가인 그녀의 벽을 뛰어 넘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차라리 우리 이사 가요. ”

“ 우리가 왜 이사가지?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저 여잔데. 무고죄로 콱 처넣어버려야 돼. ”

“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워서 피하죠. ”

불같은 성미의 남편이 처음엔 그렇게 분노하더니 곧 내 제의를 곰곰 생각해보는 눈치였다.남편이 결정하기 쉽도록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 이상으로 큰소리를 내었다.

“ 당신이 내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며? 더구나 고아원 출신이라고? 그거 누구 프로필이야, 대체. 상상력도 좋으셔. 아하, 그러고보니 본인 이야기군. 본인 과거가 그렇게 애들 담임 있는데서 공표하고 싶었나본데 내가 당장이라도 증거물 갖다가 그렇게 해줄까? ”

“ ...... ”

“ 나 진즉에 당신 정체 알고 있었지만 당신 자존심 생각해서 여태껏 모른체 해주었던 거야.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뭐 내가 어쨌다고? ”

“ ...오해야. 그런 말 한적 없어. ”

“ 그래? 그런데 어쩌지. 당신이 오리발 내밀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들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 귀가 모두 잘못 될리는 없고... 난 당신이 우리 오빠를 속이고 사기결혼 했단 얘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내가 내 남편을 사기쳐서 결혼 했다는 얘긴 이제 처음 들었는데  당사자인 내 남편도 이제서야 알았으니 엄청 당신이 고맙다고 하더구만. 법원에 날 사기죄로 당장 집어넣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어쩔거야. 법정에서 그렇게 증언할 확실한 증거는 있는거야? 만약 아무 증거도 없이 한 거짓말이라면 내가 당장 당신 명예훼손죄로 집어 넣을테니 각오하고 있어. ”

“ ...... 똑. ”

그녀는 자신이 불리하다고 여겼는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이죽거리듯 그녀에게 전화를 하는 내게 남편은 손사레를 쳤다.

“ 이사 가자. 그런다고 그 여자가 잘못을 뉘우치겠어. 괜한 에너지 소모하지 말고 우리가 차라리 이사가자. 너무 말도 안되는 여자랑 싸우며 여기서 사는 게 피곤하다, 피곤해. ”

그 날 우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집을 내놓았다.

임자가 잘 나서지 않았다. 전원주택 붐이 불고 있었으나 아이들 교육문제와 일상생활의 불편함 등 여간 용감한 결단이 아니고는 막상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이 그리 눅눅치 않아서 작자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우리가 직접 지은 집이라서 튼튼하고 쓸모가 있었는데도 너무 외진 곳에 집 두채만 달랑 있어노니 대부분 안주인들이 퇴짜를 놓는성 싶었다.

지루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 마음은 벌써 집을 떠났는데 집이 팔리지 않으니 지루하기도 하고 계속 안 팔리면 어쩌나 하는 초조감도 들었다. 그럴수록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했고 속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이 집에서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집을 보려는 사람이 드물게 있던 어느 날, 집을 사려는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다. 그들은 신중하게 집안을 살폈다. 두어번쯤 둘러 보고난 뒤 계약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제 드디어 이사갈 수 있게 되어 우리 부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계약하기로 한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나는 대로 우리가 이사갈 신도시 아파트들을 물색해 보았다.

그런데 계약하기로 한 하루 전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이 취소되었다는 통보였다.

“ 그분들이 전날 한번 들러보았는데 그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다지 뭡니까. ”

“ 옆집 아주머니라구요? ”

“ 네에. 근데 글쎄 그 아주머니가 계약할 분한테 그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인데 왜 사려고 하느냐며,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지 몇 년도 버티지 못할 그런 집을 사놓고 이사와서 자기를 원망할까봐 충고해 주는 거라고 하더래요. 대체 그 소리가 무슨 뜻이냐고 오히려 우리하고는 다시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계약하실분이 어찌나 난리를 치시는지... 우리 신용까지 문제가 생기게 되었으니 어찌나 난감하던지. ”

부동산 중개인의 원망 섞인 하소연에 그건 그 여자의 모함이라고, 우리가 평생 살려고 지었는데 무슨 그런 억울한 소리를 하느냐고, 그 여자가 우리와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훼방을 놓으려고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해명을 했지만 그 계약은 이미 물건너 간 것 같았다.

우리가 방심한 사이 그녀의 비수는 정확히 우리를 향해 있었던 것이다. 사라진 오빠 대신 우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려는 그녀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하고 방심하고 있었던 우리의 허를 정확하게 찔러온 것이다.

왜 그런 방해를 하느냐며 따지러간 우리 부부에게, 그녀는 얼굴 한번 옆으로 돌리는 법 없이 시선도 우리와 정면으로 맞받으면서, 자신은 단지 모든 건물에 있을 법한 보편적 위험 가상도에 대한 충고였지 특정 건물을 지칭하며 한 얘기가 아니었으니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그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친척끼리... ”

“ 친척이라뇨? 누가 친척이예요. 친척끼리라서 끌어 안고 그래요. 혹시 알아요? 애인 사이면서 무늬만 친척인체 하는지... ”

“ 무슨 소리야, 누가 무얼 어쨌다고? ”

“ 너하고 준이 아빠하고 껴안고 그랬잖아. ”

“ ........ ”

“ 내가 모르는 줄 알아? ”

남편이 어떻게 된 거냐며 그녀와 나를 번갈아 봤다.

“ 점점 이 여자가 미쳐가고 있네. 없는 소리까지 지어내는 것을 보니 너 아주 중환자구나. ”

남편이 혹시 무슨 오해라도 할까봐 걱정되면서 목소리가 떨려왔다.

“ 왜 그렇게 악을 쓰니. 뭐 찔리나보지. 똥뀐놈이 승질 낸다고 ... 나 늬들 이상한거 다 알아. ”

“ 무얼 안다고 그래. 생사람 잡는게 네 취미니? 네 남편 대신 내가 너 살인 미수로 신고할 수도 있어. 그러고 보니 수상하네. 너 혹시 네 남편 죽여서 어디다 감춰놓고 나한테 생떼 쓰는 거아냐? ”

끝도 없는 공방전을 남편이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내리치는 사태까지 갔을 것이다.뺨까지 부르르 떨면서 흥분한 나를 남편이 강제로 돌려 세워 돌아오는데, 그녀는 갑자기 남편을 낚아채어서 발돋음으로 키를 곧추 세우더니 남편의 귀에 바싹 자신의 입을 대고 나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조심하세요. 옛날부터 수상쩍었어요. 지금도 둘이 서로 내통하고 있을거예요... ”

처음에 남편은 그녀가 무슨소릴 하는지 의아해 하다가 이내 몸을 떨구면서 냉큼 소리를 질렀다.

“ 이 여자가 무슨 소릴 하는거야! 어서 정신병원이나 가보쇼. 괜히 죄없는 우리 괴롭히지 말고. ”

남편은 그녀에게 일말의 틈도 보이지 않고 그녀를 무시해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자칫했더라면 그녀를 치고 말았을 순간이었다. 그녀는 걸리기만 해봐라 자신에게 손끝이라도 댄다면 폭행죄로 경찰서로 집어 넣어야지 하고 잔뜩 벼르고 있었을게 뻔했는데 그렇게 걸려들었으면 어찌되었을까. 아찔하였다. 이런 에견을 했었을 남편이 적극적으로 싸움을 말린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막상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남편에게 했던 그녀의 말이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대로 그녀의 말을 믿지는 않지만 서로 불편해진 느낌이 드는건 어쩔수 없었다. 내 시선을 피하며 담배만 피우는 남편에게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겠는데 섣불리 잘 못 말하면 더욱 이상해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무엇이라 변명할 적당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빠를 껴안아 주었다는 것은 과장이기도 했지만 그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거기에 대해서 할말이 없기도 했다. 오빠가 그녀로부터 변기 테러를 당했던 날, 너무 측은한 마음이 들어 우는 오빠의 등을 잠시 보듬어 주었었다. 친척 오빠에 대한 동정뿐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의 아픔이 가슴에 애이도록 다가왔던 순간이었다. 생판 남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이라면 어으 누구라도 그런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훔쳐본 그때 그 일을 남편에게 어떻게 해명한단 말인가.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사촌오빠에게 한때 이상한 감정도 생기기도 했었다. 어릴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유일한 남자였던 오빠에게 사춘기가 되자 미묘한 감정이 싹트면서 오빠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지고 동시에 그런 감정이 두려워지기도 했었다. 새엄마 밑에서 어딘지 우울하게 자라는 오빠를 지켜보면 연민을 갖게 되었고 이를 오빠에게 조심스럽게 표현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오빠는 사춘기 소녀의 감성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잘 타일러 서로 좋은 사촌간이 되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런 사춘기적 감정은 바람처럼 흘러 성인이 되자 한때의 철부지 감정이었음을 잘 알게 되었다. 아무 일도 아닌 옛 이야기를 그녀는 오래된 서류철에서 찾아내어 나에게 위협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녀가 혼자 지었을 흉측한 웃음이 떠오를 때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꾸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의 정체는 한 발만 내디디면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은 전조감이었다. 그래서인지 밤마다 그녀의 꿈을 꾸었다. 그녀는 더러운 가래침을 뱉어 내 숨을 막기도 했고 남편이 그녀의 얼굴로 변하기도 했다.

“ 집을 좀 더 싸게 내놔야 겠어요. ”

그녀의 방해로 여러 번 조정을 거쳐 싯가보다 많이 내려서 내놨었는데도 집이 나가지 않고 시간만 끌자 이제 그 내린 가격에도 자신이 없어졌다. 남편은 내 의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 좀 더 기다려 봅시다. 우리가 지나치게 값을 내리면 오히려 사람들이 무슨 큰 하자가 있어 그렇게 헐값에 내놓은 거라고 의심만 하게 된다구. 평생 살집이라고 그렇게 공을 들여서 지은 집인데 그런 오해까지 받아가며 헐값에 처분할 수는 없지. ”

내게 이는 불안감이 어떤 것인지 남편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 자신도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을 이유로 남편의 이성적 판단이 바뀌기를 강요할 수는 없었기에 나 혼자 애만 태웠다. 나는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초조감으로 괜히 놀라거나 아이들에게도 이유도 없이 화를 잘 내어 엄마를 피할 정도였다. 평소 불같던 남편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화를 잘내는 아내를 참아내느라 힘들어 했다. 빨리 집을 팔고 떠나는 길만이  이모든 수렁에서 빠져나가는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사전예고도 없이 술냄새를 풍기며 남편이 늦게 퇴근해 온날, 남편은 체머리를 흔들었다.

“ 어후, 끔찍해. ”

“ 무엇이요? ”

“ ...... ”

남편은 무언가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 아무튼... 당신 말대로 내일 가격을 더 내려서 내놔봐. ”

그 동안 완강하게 내 의견에 반대하던 남편이 먼저 더 집값을 내려서 내놓자고 서둘렀다.

그리고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혼자 혀를 찼다.

“ 왜 그래요? ”

“ 당신이 오해할까봐 말하기가 그런데... 솔직히 지금 당신한테 얘기하는게 나을 것 같아. 나중에 더 큰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하는 얘기인데... ”

무척이나 뜸을 들이면서 남편이 하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퇴근 무렵 난데없이 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 여자였다.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없는 사이인데 무슨 이유일지 궁금했다. 회사 근처라고 하는데, 다른 핑계를 대고 만나지 않으려는 생각도 했으나 회사까지 찾아와 자신을 만나려 하는 용건이 궁금하기도 했다.

앙숙처럼 대하더니 무슨일일까.

어두운 조명 아래 칸막이가 쳐진 카페 구석에 있는 그녀를 발견했을 때 남편은 멈칫했다. 

짙은 화장과 젖가슴의 골이 드러나도록 깊게 패인 옷을 입은 그녀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의 차림새였다.

그녀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남편은 그녀가 설치해 놓았을지도 모르는 덫에 걸리지 않으려 조심하며 그녀를 대했다. 자리에 동석하자마자 술을 권하는 폼이 어느 고급요정에서 만나본, 남자를 다루는데 능숙한 그 방면의 여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술이 몇번 오가자 남편은 처음의 경계심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편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숙여 자신의 가슴을 살짝 보이게 한다거나 우연을 가장하여 팔을 스치는 행동이 아무래도 많은 경험을 쌓아온 여자 같았다. 처남이 알고 있는 거래처 여직원이 아닌 또 하나의 숨겨진 과거가 있지 않을까 의심되었다. 하긴 이 상황에 이르러서 숨겨진 과거가 더 드러난다 해도 더 이상의 과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녀의 결혼은 이미 파탄 상태이고 또 그녀가 어떤 비밀이 더 드러난다 해도 이미 더 받을 충격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술기운 탓인가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 가는 그녀의 의도 때문인게 자꾸 자신의 이성과는 달리 그녀에게로 빠져들어 가려 했다.

“ 내 남편이 평생 당신 아내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살아요. 왜 의심하지 않는 건가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요. 확증이 없었을 뿐이지. 남자가 그렇게 바보 같으니 눈앞에서 아내가 부정한 짓을 해도 모르죠. 그 사람들이 그런 맹점을 이용해 지금까지 우릴 우롱한 거라고요. ”

우리라는 단어로 그녀는 남편을 자신과 한데 묶어 동지이자 공범이라도 된 듯 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화를 끌어내려 애썻다.

“ 우리 그 사람들에게 복수해요. ”

“ 복수요? ”

“ 그거 뭐 그리 어려운 것 아니에요. 우리도 즈이들처럼 해버리면 그만 이에요. ”

그녀의 노골적인 제의에 남편은 욕정이 일어남을 느꼈다. 그래 한번 해버릴까. 복수가 아니더라도 한 번 자버리고 말면 그뿐. 큰 의미를 두지 말고 저 여자 큰 젖가슴을 아무렇게나 만지고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간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던 욕을 실컷 해주는 거야. 별의별 충동이 들끓는데 견딜 수 없었다. 남편은 왜 그렇게 이성적인 마비증세가 오는지 심호흡으로 자신을 달래고도 계속된 유혹에 한들리는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처남과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함정이다를 수 없이 되뇌었다. 그곳에 그대로 더 있다간 아무래도 그녀와 넘어선 안될 선을 넘을 것 같은 위태로움을 느끼고 비겁하지만 그녀 몰래 남편은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우리 집 앞에 서 있는 그녀와 딱 부딪혀 밀치고 들어 왔다고 했다.

집안에 들어와서 따뜻한 실내등 아래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는 순간 방금 전의 일들이 소름 끼치는 괴기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말 큰일을 낼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남편은 고백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는 남편몸이 오싹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의 의견대로 집을 싸게 내 놓으니 바로 다음날 작자가 나타났다. 그 날 계약은 이루어졌고 나보다 더 위기감을 느끼는 남편에 의헤 가장 빨리 이사갈 수 있는 여건의 신도시 아파트도 구하게 되었다. 집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손해가 막심하건만 그 동안 우리가 받았던 심리적 고통을 생각하면 재산상의 손실도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이 없었다고 여기기로 했다. 남편의 월급을 쪼개 아끼고 아껴서 작은 아파트를 사고 몇 년을 다시 저축해서 큰아파트로 옮기고 평생 소원이었던 전원주택을 손수 지어 작은 텃밭에 채소를 가꾸던 몇 년간의 시골생활은 그녀로 인해 끝장난 것이다.

시골에서 다시 도시의 아파트로 들어가려하니 평생 가족처럼 같이 살려고 했던 독일산 사냥개도 아는 이에게 보내야 했고 너른 마당과 지하창고를 믿고 방만하게 늘어난 살림살이들을 허튼 구석 하나없이 꽉짜인 아파트 구조에 맞게 대폭 줄여야 하니 이사갈 일도 만만치 않은 노릇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이사가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 이사가는 것이 무엇보다 정들었던 개와 헤어지는 거라면 차라리 자신들이 그대로 남아 개들을 돌보며 살테니 엄마와 아빠만 아파트로 이사를 가라며 매일 시위를 벌였다. 그러다 개를 건네 받기로 한 새 주인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개를 끌어 안고 놓아주지 않으려 해서 애를 먹어야 했다. 아이들의 서러운 울음을 뒤로 낯선 주인에게 끌려가는 개도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습이 어찌나 마음을 아프게 하던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이사짐을 싸는데 구청에서 고액의 벌금이 날아 왔다. 불법 쓰레기 소각 행위로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이었다. 도시와는 달리 쓰레기 수거차차가 다니지 않아 재생용이 아니면 쓰레기를 묻거나 소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집이라고는 두 채 밖에 없는 이 행정 사각 지대에 내가 쓰레기를 소각한 것을 어찌 알았는지 알아보려 구청에 갔다.

사정은 알지만 누군가 쓰레기를 태우는 내모습까지 사진으로 찍어 고발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담당공무원의 얘기를 듣고 고액의 벌금 고지서를 가져 올 수 밖에 없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돌아와 그녀의 집을 보니 거실의 커튼까지 활짝 열어 젖히고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거실 바닥을 닦고 있었다. 마치 내가 보아주길 바랬던 것처럼 한하게 드러난 실내에서 가슴이 깊게 파인 실내복을 입은 채 걸레질 하고 있었다. 우리 집 쪽을 향해 엎드려 있는 그녀의 가슴팍에서 흰 젖가슴이 옷 밖으로 모두 튀어 나올 듯 출렁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던 남편이 신음하듯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흔들었다.

“ 저 여잔 악마야. ”

이사가는 날 아침이었다.

이사짐 센터 직원들이 전날 미리 싸놓은 짐들을 나르느라 분주한 시간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서두르고 싶은 마음에 웃돈까지 주어가며 예정보다 하루 전날 짐을 싸놓고 새벽부터 이사짐을 나르는 중이었다.

뻐꾸기가 울었다. 누굴까. 이 바쁜 와중에. 조금 있으면 전화국에서 전화를 끊기로 했기에 시계를 보았다. 다급한 목소리의 오빠 전화였다. 당장 그녀 집에 가달라는 부탁이었다. 아이들이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그녀가 죽어버릴 거라고 고함치고 뒤이어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는 것이었다. 수화기를 놓자 마자 또 이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그녀집으로 갔다. 그 짧은 순간에도 죄없는 아이들은 제발 무사하길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다. 열려진 현관으로 들어가보니 그녀는 거실에 쓰러져 있었고 그녀 곁에서 아이들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찌나 겁에 질렸던지 울음조차 토해내지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왼쪽 팔목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팔목을 그은 칼이 오른쪽 손안에 쥐인채 였다. 119를 불러 그녀의 다급한 상황을 알렸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끝낸 구급대원은 상처가 그리 깊지 않으니 안심해도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죽을 마음에서 그런 게 아니고 시위용일거라고 전했다. 그러고 보니 왼손잡이인 그녀가 정말 죽을 생각이었다면 왼손으로 오른쪽 팔목을 그었을텐데 그녀는 다른 사람들 왼손만큼 힘이 없는 오른 손으로 왼쪽 팔목에 칼을 댄 것이었다.

아이들을 잘 달래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다급하게 전화가 울렸다. 아마도 사안이 궁금한 오빠의 전화가 틀림 없었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오지 말라고 전하려는데 전화 상태가 좋지 않아 전달이 잘 안되는 듯 싶었다. 그래서 끊고 다시 연결하여 오빠에게 그녀가 연극하고 있음을 알리려 했다.

“ 오빠, 오지 않아도 돼. ”

“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

“ 오지 않아도 된다고. ”

“ 뭐? ” (뚜우우...)

전화 상태가 안 좋은지 오빠는 계속 안들린다고 외쳤고 나는 악을 쓰며 오지 말라고 했다. 내 악쓰는 소리에 내용은 모른 채 더 다급해진 오빠는 그래 내가 빨리 갈게 하고 길게 외쳤다. 뚜우우. 설상가상으로 그 때 전화가 끊겼다. 하필이면 그럴 때 전화국에서 전화를 끊다니. 야속한 노릇이었다.

오빠는 참 운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오빠가 그녀에게 걸려들었으며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그녀에게서 도망쳐 갔는데... 이제 돌아오면 오빠는 과연 제힘으로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을는지... 그 때 전화만 이상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그녀와 아이들은 멀쩡하다고, 오빠를 포획하기 위한 미끼라고 전해 주어 오빠를 오지 않게 했을텐데...

안타까움도 잠시, 남편은 이사짐이 모두 실렸으니 빨리 차에 타라고 성화를 댔다. 어미도 없이 그녀의 집에 남겨진 오빠의 아이들이 거실창에 얼굴을 대고 떠나는 우리를 향해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래, 안녕. 모든 것은 어른들의 잘 못이란다. 

그 아이들 속에 아직 당도하지 않은 오빠의 창백한 얼굴도 함께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고 고개를 돌렸다.

뒤뜰에서 몰래 자란 해바라기가 언제 그 집을 무너뜨리고 저 혼자 해를 보고 웃을지 알 수 없었다.

   

                    _ 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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