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로 [운주사 석불] 45*45cm, 한지위에 아크릴. 2005
천년 동안의 사랑
이대흠
처음으로 와보네 라는 그녀와
운주사에 갔네 빨리 온 찬바람에 말라 쪼그라진 나뭇잎들
잎들은 저마다 곱게 물들길 원했을 것이나
계절은 참혹한 운명을 선사하였네
그래도 끝끝내 제 상처를 다스려 가을을 물들인
감잎을 보며 그 감잎처럼 저물어가는 그녀에게
사랑을 말하지 못 했네 노을 같은 측은함으로 나,
그녀의 손을 잡았을 뿐 언제 지은 절인지
누가 지은 절인지 알 수 없어
더 믿음이 가는 돌부처들 지나 와불 뵈러 가는 길
하필 머슴부처가 뭐냐고 부처도 주인 있고 머슴 있냐고
우리는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렸네
나뭇잎 몇 덮고 누운 와불은 말이 없고
천년을 합궁하고 있는 와불을 보여주려
그녀의 손을 잡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때
나는 잠시 와불이 되어 그녀를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네
아주 잠깐의 천년 그녀는
부론 폐사지에서 보았다는 느티나무 이야기를 하였네
처음엔 너럭바위였다고 그러나 손톱으로 두드려보니
텅 터엉 목어가 되어 울더라고
천년 세월이란 나무가 돌이 되는 시간이라고 하였네
오래된 나무의 뿌리는 누군가의 속울음을 다 받아들여
그렇게 검어진 것이라고 쓴 적이 있네
그 뿌리 천년의 세월을 다 받아들이면
돌이 되겠지 저렇게 캄캄히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잎 내지 못하는 돌이 되겠지
나는 천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네
나무의 가지들처럼 엉킨 기억의 끝 어디쯤에
천년 전 기억이 맺혀있을 것이네
가슴이 조금 뛰었을 뿐 그녀 얼굴이 아련했을 뿐
선명히 떠오르지 않았네
가파른 길을 걸으며 하이힐을 벗어버릴까 나를 보던 그녀
나는 그녀가 맨발로 돌아가는 게 두려워 그녀를 부축하였네
나 그녀와 맨발의 세월로 돌아가게 되었다면
어쩌면 운주, 그 배 위에서 내리지 못했을 것이네
나는 절인 배추처럼 젖은 목소리로 나이 듦과 건강과
가족의 안부 묻는 말 따위나 하였네
처음이 아닌 것 같네 라는 그녀와 운주사를 빠져 나왔네
천년 전 우리가 나란히 누워 사람들의 시름에
캄캄해지면서
노을 같은 분홍 울음 쏟아냈던 기억
천년 동안 합궁하며 세상의 쓸쓸함을 다 어루만지는
바람을 자식으로 두었다는 그 사실도 잊고
운주에서 천천히 빠져 나왔네
글 출처 : http://blog.daum.net/thre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