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와
시 : 곽경미
그림 : 김성로
회색빛 검게 타버린 함묵(含黙)
금이간 분지(盆地)의 들판에
갯내음 눈물고인 바다가 출렁인다
잘 익어버린 능선따라
보일 듯 말 듯한 시간의 빗살무늬
눈 부럽뜬 시어머니 호령에
안간힘 버터 내며 허리띠 졸라매던
그렁그렁 눈물 맺힌 울 어머니
그 빗살 접어 얹어놓던 하늘이고
봉숭아꽃 피어 달래어 주던 담장 밑
그림자로 떨어지던 차가운 달빛이여.
잔칫날 뒷곁 아궁이 가마솥에 피워낸
매운연기 아프고 환한 가락되어
길 삼매던 며느리 한숨 삭힌 틈새
담장 위로 한울타리 꽃 영글어갈 때
아슴한 저녁 가슴에서 피어난 꽃잎
쇠잔해져 어둠에 사그라지고
야무진 계절 수북히 쌓인 달빛
하얀 너울 옷 벗어 놓고 갔어라
땡볕에 버선코 닳아진 네 뿌리 밑으로
별의 시퍼른 눈물 묻고서 기적처럼
잘 달궈진 정오의 햇살이 놀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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