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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삶의 재 조명/김영준

 

 

 

 삶의 재 조명   


                      시 :  석산김영준

                     그림 : 솔뫼 김성로                 


추억을 먹고 산다는 것이 더러는 아름다울 수도

때로는 괴로울 수도 있으려니

우리가 지나간 것을 못잊음은

잊기 싫어서가 아니라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아

우리의 가슴 속에 쌓여 있는 지나간 모든 것을 날려서

빈가슴으로 남게 해다오

잊혀진 날들이 되게 해다오


가슴아린 추억을 안고 저녁 놀 공원 숲 사이로

천근의 발길이 수 놓아진다

삶이 가져다 준 가장 잔인한 신(神)의 장난은

아픔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못잊게 하는 것


높이 날고 싶다  하늘 끝까지

깊이 잠수하고 싶다  바다 밑까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깊이를

누가 측정할 수 있으리


지나간 것과 다가 올 우리의 삶이

어차피 평행선이라면 많은 날을 가슴앓이로

서로를 닮아가며 어둡기전에 먼 길을 가야 한다


앞으로의 삶이 짙은 안개속에 묻히드라도

우리 가슴 속의 등불을 밝혀 밝게 비추어 가리니

우리 홀로서기로 세상을 바로 보자


뱀은 긴 겨울잠 끝에 본능으로 허물을 벗고

사람은 많은 생각 끝에 자의로 껍질을 벗는다

인생은 파괴함으로서 참삶의 가치를 알고

추억은 깨트림으로서 새로운 추억을 낳는다


진실로 사람이 외로움을 느낄 때

그가 지닌 삶의 눈이 멀 때인만큼

계절을 이별하고자 결심하노라면

세상은 이미 칠흑이다


바람처럼 정처없이 떠다니고 싶어라

강물처럼 시름없이 흘러 가고파라

주신(酒神)의 망각 속에 이 몸을 던져 봐도

밤하늘의 별들은 웃음꽃 피우고

세월은 새록새록 새싹을 키운다


진정으로 원하건데 나만의 추억으로 남아

철새처럼 자유로워라

산다는 것도 사라진다는 것도 모두 다

서글픈 교차로의 사람살이


사람살이가 이토록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라면

삶의 허물과 껍질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여린 마음 하나 곱게 달래야 하잖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