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에 대하여
시 : 나병춘
그림 : 김성로
고요가 고여있다
고여 있으므로 잔잔하다 잔잔한 것은 담담하다
담담한 공기 담담한 의자 담담한 비구니의 절간
담담한 날개 담담한 침묵
작은 유혹에도 쉽사리 넘어진다
찰랑거리던 물방울들 어딘가로 스며든다
목구멍 속으로 더 침침하고 시끄러운 곳으로 빨려든다
고요가 빨려들다니 허방 속 막장 속으로
아무도 몰래 돌 틈에 졸방제비꽃이 피었다
제비꽃 향기는 고양이 발바닥처럼 고요하다
돌 틈에 고여 주변을 슬금슬금 돌아댕긴다
애기똥풀 노랗게 흔들릴 때 고요가 계단 끝에서 미끌어지고
찔레꽃 하이얗게 바람에 스치울 때 고요도 바람에 날린다
고요의 무게는 없으므로 바람의 유혹에 금세 얼굴이 부서진다
넘어진 향기들
넘어진 그림자들
넘어진 입술들
넘어진 발가락들 질펀하게 춤사위를 벌인다
부라리는 사천왕상으로 찔끔했던 내 속이 문득 환해진다
나도 가끔은 고요의 풍경처럼
고양이 눈동자 속으로 말랑말랑한 발톱 속으로 숨고 싶은
나른하게 적막한 비구니의 절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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