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서 꽃의 향기로 숲에 지다
시 : 강이슬
그림 : 김성로
몇 갈래로 나 있는 길 중
먼 길을 택해 홀 리 듯 나섰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바람에 일렁이며
마냥 기다리는 들꽃이 되려 한다
꽃샘바람 속에 하늘을 활짝 연
월동리 청 매화의 흐드러짐 속에
향기 같은 그리움은 모두 놓아 흩었다
소리없는 향연 거기에 취하면 될 노릇이었다
지리산 산등성이로 가득한 산수유에
산동성 새색시의 향수가 별처럼 피었고
송광사 지난 맴산골 보리밥집의 걸쭉한 탁주 한잔에
선암사 선암매 오십 그루 향기가 긴 전설로 아득하다
짙은 안갯속에서 섬진강은 흐르고
도도히 깊어 고요한 물속에 잠기며
환장할 만큼 화사한 날을 돌팔매질 해 수장하고
촉촉한 이슬비 속에 강을 따라흘렀다
높은 계단 끝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기세 있게 봄바람을 펄럭이는 깃발은
청마 언덕과 유 약국집에 소리 없는 아우성이고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탈쟈의 손수건인가보다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남정네를 따라 나선 별당아씨는
죽음으로 모든 허물을 침묵에 묻었고
최참판댁 토지는 하동면 평사리에 여전하다
세상의 눈초리와 불륜보다 더 차디찬
가면의 무덤은 통영 먼바다를 향해있고
죽어서 명당을 차지한 그녀를 생각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무의미를 추구하던
봉평동의 꽃 시인 김춘수님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하며 의미를 짓고
'산과 내 비 개인 다음의 봄 바다는
언제나 어디로 떠나고 있다.'하며 그도 갔다
혼자여서 오롯이 혼자일 수 있었고
시로 통곡할 만큼 고독해져서
먼저 간 시인의 말 없는 위로를 받았다
시어는 향기를 내는 꽃처럼 지천으로 피었다
예정된 좁은 길로 갔었다
미로 같은 길로 속절없이 다녔고
한결같은 강과 산에서 꽃으로 어우러졌다
꽃이 지면 또 피는 그 기약을 길위에 두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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