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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시인에게/ 정영옥

 

 

 

 

 

시인에게

 

                                 시 : 가원 정영옥

                               그림 : 솔뫼 김성로

 

 

 

돛대가 없이 배를 띄우는 사람들에게

환상은 소중한 기쁨이다

 

몇 개의 산등성이를 넘어

아. 하고 소리를 치다 보면

사방으로 뚫린 미로가 나를 환영한다

 

나그네처럼 떠돌면서

아무것도 주워 담지 못하면서

앞으로만 달리기만 하는 나는

나의 가슴 속에 수의를 걸친다

 

아침의 기색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왜 별들 사이로 지나가는 푸른 예지를

소유 하지 못하는가.

 

나는 시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시인의 손을 따스하게 잡고 싶지만

가느다랗게 떨면서

나는 언제나 춥다

 

내 기억의 흔적마다

끝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발끝으로 걸어서는 달아날 수 없는 인연처럼

오직 나는 나를 위해 증언한다

 

문을 열고 나서면

또 다시 가로막는 문의 도열 앞에서

타오름과 목마름과 배고픔과

썩은 나무토막의 굵은 연륜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나를 구속하고자 한다

 

저항이여

힘이 없는 저항이여

나는 너의 포로이면서

너는 나의 종일 수는 없는가

네가 나의 군주이면서

나는 너의 주인일 수 없는가

그리하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생각을 채집한다

 

오직 너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너의 구속을 단숨에 휘어 잡기 위하여

나를 침몰시키면서

너를 구원 하기 위하여

 

꽃잎파리 같은 미세한 폭력을 동원하여

나는

나의 내부로부터 뜨거워지는 것을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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