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을 수도 보낼 수도
시 : 김태수
그림 : 김성로
잔 고장 하나 없을 것 같은 푸른 이파리,
오랏줄에 묶인 듯
칡넝쿨에 온몸 칭칭 감겨 헉헉대는 갈참나무,
비참하게 끌려가느니 차라리 제 발로
걸어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초록빛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은
보채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갈 것이지만
무언가에 쫓기듯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둑한 숲 속으로 숨어들어야 한답니다.
너절한 모습을 더는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요
그때 숲을 박차고 나온 비둘기 한 마리,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구름을 뚫고 작열하는 태양에 몸을 던지자
작은 기억들이 안개꽃 되어
물 위에 작은 파문을 적어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잡을 수도 보낼 수도 없는 여름이지만
환한 미소와 부딪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는 날엔
어깻죽지와 어깻죽지 사이로
살그머니 날개가 돋는 법입니다.
새가 되고픈 까닭인 게지요.
반드시 떠나야겠다면
언제든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 안 해본 거 아니지만
다시 올 날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가벼운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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