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에 새가 없다 / 시 : 남유정, 그림 : 김성로
1
뒤란에 새를 키우던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안개가 이마까지 차올라 물풀처럼 흔들리는 버드나무 그림자가 창에 어룽거리는 밤이면 언덕을 단숨에 올라오는 지프의 건강한 엔진 소리를 심장에 달고 싶었다.
2
어느 밤, 몰아치는 폭우에 문 활짝 열렸는데도 날아가지 않은 새에 대해 너무 오래 입을 다물었다. 길들여진 새. 날개에 묶인 새. 날아야 하는 것을 잊은 새. 기회를 버린 새.
내가 키우던 새가 날아갔다.
3
문득 만져지는 갈비뼈
둥글게 감싸 안은 집
새장에는 울음 흔적이 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추억 한 조각에
건포도처럼 달라붙어 있는 마른 울음, 희미한 향내
몸에 눈을 조금만 돌리면 보인다
끝내 상처 놓아주지 않는 통증이 있다
날 것의 그리움을 날개 아래 감춘 새
덜컹 덜컹 덜컥! 빗장을 열고 날아간 새
무한이탈 아슬한 경계
새장이 날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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