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포플러
시 : 박주희
그림 : 김성로
바람의 길을 걷는다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의 등뼈처럼 솟아 있다
등뼈 곳곳이 푸른 옹알거림들을 터뜨리려고
봄부터 온몸에 저리 헛발길질을 해대며 푸른 멍이 들더니
바람의 길을 떠나려고 그랬나 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울음 같은 희미한 속살거림을 봄비 속에 간직하면서부터
나무는 안개 바람을 더 푸르게 키웠을 것이다
그리움도 키가 더 자랐다
바람과 함께 자란 말들이 나무에게서 뛰쳐 나가려는지
웅얼거리는 토막말들을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 말들이 나무의 등뼈를 얼마나 세차게 밀어내는지
허공에서 푸른 귀들이 하염없이 파닥거리며 뒤집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무의 뒷모습은 더 서러워졌다
희끄무레 쟃빛 허공에서 또 갈아 엎어지는 말들, 들키고 싶지 않는지
그 말들이 몽땅 터지려고 젖은 입술이 돋는 밤이면
나무는 또 얼마나 한숨처럼 그림자만 더 깊어졌는가, 아스라이 바람 속으로
바람의 길에서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는 법
빗소리 같은 말들이 나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밤새 저토록 벼락치더니
뒤집어지고 엎어지던 그 서투른 몸짓들
한 계절이 나무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갈 때마다
도저히 추스를 수가 없었나 보다
옹알거리는 우듬지를 등뼈처럼 세우며 이미 나무는 자욱해지고
요동치며 돌개바람처럼 그 말들을 삼키는 소리, 밤새 들렸다
한 계절이 그렇게 쓸려나갈 때마다
아주 많은 말들이 나무에서 쏟아졌다
웅얼웅얼 바람 속에서 뛰쳐 나왔던 토막말들이
한 계절의 나이테를 악물고 호수처럼 저물고 있지만
바람 향하여 파문치는 그 말들에 대하여 여전히 자신이 없다
나무는 자신의 등뼈에 대해서도 여전히 침묵할 자신이 없다
바람으로 태어난 것들은 바람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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