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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박정은)/단편소설(박정은) novel

헛꽃(3)

 헛꽃(3)

 

박 정 은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보여준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취했다가, 된서리 내리 듯 오른 기름 값 때문에 겨울 내내 춥고 불편하게 지내다 보니 그 동안 낭만적인 시골 꿈에서 깬 듯 했다.

난방을 많이 하지 않아도 반바지 차림으로 실내를 활기차게 다닐 수 있는 아파트의 겨울에 익숙한 명옥은 낯선 겨울 추위에 몸을 펴지 못했다. 벽돌집 틈바구니로 앞들의 겨울 냉기가 칼날처럼 파고들어도 높은 기름 값은 주방과 거실 한쪽밸브를 잠그게 했고 그러고도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 기름 값” 하며 마음을 좁히게 만들었다. 그런 겨울을 지나 끝자락인 2월이 되자 반가운 손님처럼 설레이며 따뜻한 봄날을 더욱 기다리게 되었다. 아직 겨울 끝자락이었음에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성급해서인지 몇 일간 푸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 동안 흰순이가 죽은 뒤 남은 두 마리는 잘 자랐다. 겨울 동안 추위를 피해 어미와 새끼 두 마리를 현관 안에서 키우다 다시 지하실 계단 밑으로 옮겨 간 지 열흘쯤 되었다.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자주 꾸꾸 거려 이름을 꾸꾸 라고 지은 검은 털 강아지와, 눈빛은 멍청해 보이지만 제일 먼저 태어나 덩치가 크고 부드러운 흰털에 갈색 얼룩점을 가진 강아지에게 뽀솜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같은 어미와 아비에게 태어난 두 마리의 강아지는 생긴 모습만큼이나 성격이 달랐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겁이 많아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뽀솜이와 겁이 없어 사람을 잘 따르고 활발한 꾸꾸 두 마리를 거실로 데려오니, 겨울동안 아파트에 갇혀 살다가 봄날 놀이터로 몰려와 이리저리 뛰어 노는 아이들 같았다. 어린 두 놈은 자신의 이름을 금방 알아듣고 재롱을 피우다가는 어느덧 어미가 그리워져 소파 밑으로 기어가 웅크려 있었다. 어미는 어미대로 시간이 조금 지났다 싶으면 베란다로 올라와 거실 안을 한없이 응시했다. 그러고도 제 새끼를 내 주지 않으면 낑낑거렸고, 어미의 기척에 두 새끼들은 쏜살같이 어미를 향해 달려가 거실 창 사이로 서로의 몸을 부비어 그리움을 표했다.

어미 개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일년도 못되어 어미가 되었는데도 본능처럼 습득된 위대한 모성으로 새끼를 낳고 기른다. 새끼들의 배설물을 혀로 닦아주어 주변을 깨끗이 하고 먹이를 주면 늘 새끼들이 다 먹을 때까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지켜보다가 새끼들이 먹고 난 찌꺼기로 자신의 배를 채웠다.

대체 그런 모성은 어디에서 배운 것인지. 개만도 못하다는 표현을 잘하는 인간들에게 그 표현을 바꾸어 개에게 인간만도 못하다고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개의 뜨거운 모성에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다.

겨울이 다 간 듯 따듯한 햇볕이 마당에 넘실댔다. 이월 초순인데도 날씨가 무척이나 온화하였다. 모든 사물을 감싸안고도 넉넉할 만큼의 따스함이 대기에 넘쳐나 명옥을 유혹했다.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너른 마당 이곳 저곳을 뛰어 다니며 장난질치는 것에 명옥이 흐뭇하여 지켜보는데 언제 왔는지 그녀가 덩치 큰 아이를 업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명옥은 이 평화로운 정경에 불순물처럼 끼어 든 그들 모녀가 싫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명옥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그녀는 아이를 등에서 풀어 내리고 명옥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순간 명옥은 그녀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며 고개를 돌렸다. 강아지들을 향해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그녀의 아이가 강아지들에게 위태로운 존재임이 분명한데 이들을 또 어떤 구실로 내보낼 것인가. 적당한 구실을 떠올리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그들이 내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명옥은 자신을 책망하며 그녀들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 보았지만 그런 생각은 그저 머릿속 생각일 뿐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녀와 되도록  멀어지고 싶어 졌다.

명옥은 TV나 신문에서 그녀 같은 아니 그녀보다 훨씬 심각한 장애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봉사자 소식을 들을 때면, 장애인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돌보는 봉사자의 훌륭함에 가슴이 찡해져 오면서 언젠가 나도 저렇게 봉사해야지 하는 막연한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그들을 이웃으로도 맞기가 어렵다. 그들을 피했거나 홀대하고 난 뒤면 돌아서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른 정상인들처럼 대해야지 하며 반성을 많이 하지만, 막상 그들과 맞닥뜨리면 본래적인 습성처럼 그들과 유리된 세상에 있기를 그들이 내 세계에서 멀찌기 떨어져 있기를 바라며 함께 있는 사실조차 불쾌하게 여기게 된다.

“성, 우리 개도 밖에서 길러. 이젠 성네 개도 내놔.”

그녀는 마당에서 뛰놀다가 밥그릇과 집이 있는 지하실로 들어가는 개들을 보고 명옥에게 조언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하실이 개똥과 오줌얼룩으로 더럽혀져 있는 데다 이것저것 잡기들을 물어뜯어 놓아 날씨만 풀어지면 밖에 내 놓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의 조언대로 명옥은 지하실에 있던 개집을 끌어다 마당에 내놓았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어미와 어린 강아지들은 위치가 바뀐 집 앞에서 서성이다 들어갔다. 그 동안 은폐된 지하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던 개들이 사방으로 툭 터진 집 안에 있으려니 몹시 불안한지 안절부절 못 했다. 명옥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개들의 불안감을 모르는 체 하였다.

명옥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그들 모녀에게 바쁜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서 그들을 따돌리고 들어와 현관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밀린 집안 일을 시작했다.

아이가 집요하게 매달려 현관문을 열려고 달가닥거렸다. 그만 돌아가자는 그녀와의 실랑이가 문밖에서 계속되었지만 명옥은 끝내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문을 염과 동시에 명옥의 집안을 어지럽게 만들 아이와 같은 얘기를 횡설수설 반복하는 그녀가 귀찮기 때문이었다.  끈덕지게 명옥과 같은 공간을 점유하려는 그들 모녀가 징그러운 벌레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온정을 잘 베푸는 명옥의 성정이 그녀라는 벽에 부딪히면 모질고 냉혹하여 못 된 사람으로 변질되어 버림을 깨닿게 된다. 그럴 때마다 명옥은 여실히 자신의 한계를 본다.

하루 밤이 지났다.

밤새 강아지들이 걱정되었지만 어미가 알아서 잘 돌봐주겠거니 믿으며 밤을 보냈다. 한편에서는 걱정이 되어 가끔 밖을 내다보고 싶었지만 남편의 만류에 밤새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 그동안 과보호를 했는지 몰라. 야생에서처럼 잘 적응하겠지. 그들의 조상은 늑대이고 지금도 그들 사촌형제들은 야생에서 살고있으니 하루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라고….”

이른 아침 일어나 보니 서리가 하얗게 지표면을 덮어 상서로운 풍경이 거실 창 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안개 같은 하얀 서리가 투명한 실루엣처럼 지상에 드리워져 하얀 표막의 지표면과 이루어내는 풍경은 설경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난 하얀 설경과는 달리 보일 듯 말 듯 사물 위에 신비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미학이었다..

밤새 궁금하였기에 잠에서 깨자마자 베란다 밑에 있는 개집으로 달려갔다.

개집 안에는 어미와 흰색털 뽀솜이만 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검은 털 강아지 꾸꾸가 보이지 않았다.

“꾸꾸, 꾸꾸” 하며 좀 더 반경을 넓혀 이름을 불러 보았는데 강아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뒤늦게 잠에서 깬 남편까지 합류해 검은색 강아지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 상서로운 아침에 어린 강아지는 어딜 가버렸단 말인가.

대체 밤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혹여 고양이에게 작은 몸을 물려 사라진 것인가. 아님 커다란 들쥐에게라도 파 먹힌 것인가.

이 아름답고 상서로운 날 아침에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서리가 내린 풍경이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강아지의 실종으로 허탈감이 밀려왔다.

소먹이를 주고 돌아오던 동네 아저씨가 안타까움과 허탈함에 망연히 서있는 명옥 부부에게 코를 후비는 것만큼이나 하찮은 일처럼 강아지의 위치를 알려줬다.

“저 왕겨 속에 있던데. 얼마 못살겠어.”

집에서 먼 곳까지 나가서 찾아보았었는데 바로 대문 옆 왕겨더미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니.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어미와 동기간을 벗어나서 엉뚱한 곳에 몸을 숨긴 채 떨고 있었을까. 새끼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는 흰털강아지와 여전히 장난질이었다. 새끼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어미라니 명옥은 어미개를 향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어미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아마도 호기심이 많았던 꾸꾸가 어미의 보호를 받지 못할 만큼 멀리 나왔다가 무엇엔가 쫓겨 낯선 그 곳에 숨어 어미가 있는 집 안으로 돌아 올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어떤 어미가 자기 새끼를 보호하지 않았겠는가. 어미에게 불가항력적인 어떤 일이 있지 않았겠는가.

한동안 힘겹게 떨면서 살아보려 버티던 꾸꾸는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두 달간의 짧은 생 동안 명옥과 참 정도 많이 들었었다. 형 뽀솜이보다 영리하였고 사람을 잘 따라 사랑을 받았던 검은 털 강아지 역시 흰순이처럼 죽음을 앞두고는 사력을 다해 어미와 형제 곁에서 멀찍이 기어 나와 죽음을 맞이했다.

형제의 죽음을 모르고 예전처럼 꾸꾸에게 장난을 걸었던 뽀솜이도 싸늘한 죽음의 냄새를 본능처럼 알아채고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어미가 다른 곳에 나간 사이, 마당 구석진 곳에 강아지의 시체를 묻었다. 땅이 모두 얼어있어서 구덩이를 깊게 파지 못하고 살짝 겉흙을 긁어내고 그 위에 흙을 덮는 정도로 묻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보지 못한 사이에 없어진 새끼를 찾으려고 어미는 계속해서 코를 땅에 박고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며칠 후에 오랜 동안의 노력 끝에 어미는 죽은 새끼가 묻힌 자리를 알아냈고 흙 속에서 새끼의 시체를 꺼내 마당 한 가운데로 끌고 왔다. 명옥은 거실 창으로 이런 어미 개를 지켜보며 옴짝달싹하지 못 했다. 어미개의 처절한 모성에 아이를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냈던 자신이 생각 나 눈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어미는 새끼의 시체 곁을 맴돌며 냄새도 맡고 혀로 끊임없이 핥아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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