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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박정은)/단편소설(박정은) novel

헛꽃(5)

헛꽃(5) 

 

박 정 은

 

 

 

 

마을을 뒤흔드는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들려 왔다.

울부짖음 속에 넋두리와 비명이 한데 뒤섞여 작은 마을의 아침을 깼다. 들짐승이 포효하듯 지축을 울리는 듯한 남자의 울음소리도 뒤이어 들려 왔다. 무슨 일일까? 명옥은 물론 동네 사람들 모두가 뛰쳐나왔다.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그녀의 누추한 집이었다.

아이가 죽었다.

명옥이네 개가 죽던 다음 날 아이 역시 쥐약을 먹었던 것이다.

예사로이 개밥을 퍼먹고 다니는 아이였으므로 누군가가 놓은 쥐약 묻은 밥알을 먹고 죽은 거였다. 이를 일찍 발견하지 못해 소생시킬 수 있는 조치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그녀는 동네 사람들을 향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야, 년놈들아! 늬들은 밥 세끼 안쳐먹고, 똥도 안 누고 사냐! 다 똑같은 사람이여. 나도 내 새끼도 늬 년놈들처럼 똑같은 인간이여. 왜 괴롭혀! 왜 죽이냐고오.”

그녀의 발악에 가까운 고함이 천지를 흔들 듯 동네를 발칵 뒤집어 놨다.

“내가 늬 년놈들한테 밥달라고 했어, 똥닦아 달라고 했어. 왜들 지랄이야.”

그녀는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고 그 동안 참았던 오줌을 누듯 마구 소리치며 날뛰었다.

그녀가 광란하는 동안 동네사람들은 제각기 문을 닫고 들어가 그녀 눈에 띄지 않도록 숨어 지냈다.

며칠간의 북새통 끝에 아이는 산 속 어딘가에 묻혔다.

다섯 살이 넘도록 호적에도 아직 오르지 않았던 아이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가 남기려 했던 아이를 잃고 그녀는 단종의 아픔을 묵묵히 버텼다. 그녀는 그 아이를 낳으면서 친척들에 의해 강제로 불임시술을 당했으니 이제 어디에도 그녀의 아이는 살지 않을 것이다.


신물이 계속되어 명옥은 가던 길을 멈추었다. 명옥이 남편 몰래 피임기구를 떼어냈던 것이 몇 달 전이었다. 그 뒤로 월경이 끊어졌고 얼마 전부터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이 사실을 알면 남편은 뱃속아이가 정상인지를 판가름하려 들것이고, 또 합법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남편 스스로 불임시술을 받아 버릴 것이다.

명옥은 이제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다. 세상의 검열 없이 주어진 대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 어떤 생명이든 살아있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산중턱쯤에 발길을 멈춘 명옥은 올라오면서 하나 둘 씩 꺾은 싸리나무 흰 꽃과 산수유의 노란 꽃들을 가슴에 안은 채 속살처럼 벌건 흙이 드러난 흙더미 위에 토하기 시작했다.


   _ 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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