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꽃(4)
박 정 은
명옥은 다운증후군의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거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차라리 죽어버리길 바랬다. 모든 이의 우스개 거리가 될 아이. 그 애가 받아야 할 세상의 홀대와 자신이 그런 아이 어미로서 겪게될 비극이 두려웠다.
남편도 또한 명옥과 같은 생각이었다. 시댁식구나 친정식구 어느 누구도 나서서 그 애를 살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살 권리가 있다. 최선을 다해 살려야 한다.”
명옥 자신은 가슴 한 구석에서 거칠게 일고 있는 그런 바램을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살의에 합류하였다.
그래서 아이는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편은 애가 묻힌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명옥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애의 존재는 지구상에 나뭇잎 하나가 떨어진 것만큼의 진동을 남기고 자연 속으로 돌아갔고 이를 어느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명옥은 해마다 그 애가 태어나 이 세상에서 생명체로 살아 있던 그 시간들이 돌아올 때면 앓아 누웠다. 생일날 그 애 무덤에 꽃이라도 바치듯이 자신의 몸을 누이고 꼼짝 않고 지냈다.
퇴근해 돌아오던 남편이 마당에 전시하듯 누워 있는 강아지 시체와 그 옆에서 맴도는 어미개를 발견하고 급제동을 걸어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차 밖으로 나와 그들 모자를 말 없이 한참동안이나 지켜보았다. 그러던 남편은 거실 쪽을 홀낏 보면서 혹시라도 명옥이 이 장면을 보았을까 염려되는지 걸음을 빨리 해서 지하실에서 삽을 꺼내왔다. 꺼내온 삽으로 죽은 강아지를 떠서 어디론가 집밖으로 가져갔다. 어미개가 컹컹 쇳소리를 내며 남편을 따라가고 그 뒤를 옆집 누렁이가 눈치를 보듯 어슬렁거리며 따라가고……. 그들의 장례행렬은 산 속에서 들리는 삽소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 날 저녁 명옥은 밤늦게까지 마늘을 깠다.
TV 앞에서 내내 말없이 누워있던 남편은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명옥은 급하지도 않은 마늘을 말없이 쉬지도 않고 깠다. 한 자루를 넘을 만큼 마늘껍질이 쌓였으나 명옥은 계속해서 마늘을 깠다. 그 날 저녁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커다란 집안에 차갑게 흐르는 적요함 사이로 TV는 여전히 시청자도 없이 혼자 떠들고 웃고 울었다. 보는 둥 마는 둥 마늘을 까면서 TV를 보던 명옥은 시선을 멈추었다.
정신지체 장애인을 돌보는 어느 목사부부의 삶을 취재한 다큐였다. 그 목사부부는 그들을 보호해 줄 뿐 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이며 최대한의 책임이 따르는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들끼리 부부 연을 맺어주고 그 후에 세상이 정해준 규범을 숙지하도록 교육하고 있었다.
그들도 본능처럼 감지되는 욕망을 목사의 지도에 따라 정상인들처럼 결혼이라는 세상의 형식에서 풀었으나 그것이 남들에게 노출되면 부끄러운 일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규범을 몰라 남들이 보는 앞에서도 애정표현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목사부부는 부부의 성애는 은밀하게 다른 이들이 모르게 하는 거 라는 것을 누누이 교육하였다.
보통사람이라면 당연할 수 있는 결혼의 권리를 어렵게 찾은 그들은, 그러나 결혼이 주는 또 다른 권리인 자녀 생산이나 양육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정박아를 낳을 가능성과 올바른 부모노릇을 할 능력이 없으며 경제적 자립도 할 수 없기에 모두 불임시술을 전제로 결혼한다는 내레이터의 설명이었다.
저녁 내내 기척도 없이 누워있던 남편은 명옥이 TV를 보고 훌쩍거리며 울자 무심한 표정으로 명옥을 한동안 넘겨다보다 리모콘을 찾아 TV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여러 번 명옥이 낙태하자 남편은 스스로 불임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명옥은 남편을 말리는 대신 자신의 자궁에 불임기구를 설치하였다. 그렇게 하고서야 남편은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이렇게 끝낼 수 있는 것을 바보스럽게도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구나 하여 오래 묵은 숙제를 푼 사람 같았다.
동갑내기인 명옥 부부가 마흔 살쯤으로 다가서자 명옥은 물론 남편도 말수가 훨씬 줄어들었다. 일상적인 대화도 거의 없어진 부부는 마치 벙어리 부부 같았다. 결혼한 햇수가 한 해 한 해 늘어날 때마다 허무함이 풀뿌리하나 없이 빗물에 씻기어 가는 흙구덩이처럼 커졌다.
무릇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가 영원히 이 세상에 남길 바란다. 자신은 사라지더라도 후손을 통해 그런 욕망을 실현시키려는 종족보존본능이 무참히 무너진 명옥의 남편은 결혼한 햇수가 더해지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말이 없어져 갔다. 이런 남편의 등을 볼 때마다 명옥의 가슴속에는 시린 겨울바람이 돌아다녔다.
3
어둠 속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뒷집 할머니였다.
마약 탐색견처럼 할머니는 명옥이네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그년이 김치 담그다 말고 어디로 가서는 밤이 다 되도록 안 와서 혹시 예 있나하고 와 본 거야. 망할 년, 배추를 이틀이나 절여 놓고는 씻어서 김치 버무릴 생각은 안하고 어딜 가서 안 보이는 거야.”
온 동네가 그녀의 친척이라서 그녀는 자유롭지 못한 몸이었다. 늘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의 거취에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많이 하는데 언제인지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자 손위 동서들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서슬이 퍼래져서 그녀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할머니는 그녀에 대해 한마디 덧붙였다.
“없는 것도 없이 살더구만. 냉장고엔 소고기도 있고, 생선도 있고……, 잘 처먹고 살어 그년이….”
할머니의 어투 속엔 자신과 그 밖의 보통사람들처럼 그녀가 쇠고기나 생선 같은 고급음식을 똑같이 먹고사는 것이 분하다는 듯 했다. 모자라는 사람답게 정상인과는 달리 먹는 것도 하급의 식생활을 할거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아 화가 난 듯 했다. 그녀의 남편이 인근 시 청소부로 동네에서는 유일한 월급쟁이인 셈인데, 그녀가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고기도 사먹고 생선도 사먹고 옷도 사 입고하는 게 당연할 텐데,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시샘을 지나 분노를 느꼈나 보다.
새벽부터 명옥은 신물이 올라와 잠을 설쳤다.
한번 잠이 들면 벼락이 쳐도 모르고 잠을 자는 남편이 그녀의 기척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불을 들추고 나가려는 명옥을 꼬옥 껴안는다.
남편이 더 이상 깨지 않도록 얼마간을 숨도 크게 쉬지 않고 몸을 그대로 정지시켰다가 슬며시 잠자리를 빠져 나온다.
마을은 조용히 새벽잠에 빠져있고 잠든 이들을 깨우기 위해 안개가 밀려오고 있다.
명옥이 동네를 가로질러 마을 뒤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드니 개들이 새벽을 찢듯이 짖어댄다. 그 소동으로 마을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명옥은 얼른 산길 쪽으로 걸음을 재촉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이슬로 치마 끝이 축축하게 젖어서 마치 추를 달아 놓은 것처럼 명옥의 발목을 감아 훼방을 놓는다.
어디에 묻은 것일까.
마지막 남은 흰털 강아지 뽀솜이 마저 죽었다. 전처럼 어미가 죽은 강아지시체라도 꺼내 올까봐 그랬는지 남편은 어미 몰래 어느 깊은 곳에 묻었다고 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동네사람들이 사방에 쥐약을 놓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쥐약은 쥐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못자리 하우스나 밭농사를 망치기 십상인 풀어놓은 개를 잡기 위한 위협용이라는 것을….
명옥은 그저 봄이 시작됨이 좋았다.
푸릇푸릇 마당에 돋아나는 새싹들, 조용하던 마을에 기지개를 켜듯 농사준비를 하는 마을사람들의 농기계 소리, 점점 어미 몸집만큼 커 가는 강아지의 장난질…, 이 모두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나올 만큼 좋았다.
봄의 너그러움이 좋았다.
가끔씩 문을 두드리는 두 모녀의 출현으로 인해 이런 구도가 깨어지기는 했지만, 봄이 너그러운 어머니 품속 같아서인지 그녀들에게 점점 익숙해져서인지 두 모녀가 깨는 정적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아이는 겨우내 무럭무럭 자라나 있었다.
자라지 않는 정신 대신 에너지가 모두 아이의 몸으로 갔는지 또래 보다 아이는 훨씬 웃자랐다. 동네 앞길에서 과속하는 자동차에 치일 뻔한 적이 있었던 일 말고는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자라 비만에 가까울 만큼 살도 쪄 있었다.
반면에 그녀는 더욱 늙어 보였다. 정상인의 평균수명보다 짧게 타고난 때문인지 피부는 오십대보다 더 주름이 졌고 억센 말갈기 같은 머리카락은 반정도 나 희게 세었다.
그녀의 기본 틀은 삼십대 중반의 몸인데 피부나 머리카락은 노년으로 보여 처음 그녀를 보는 이는 그녀의 나이가 얼마쯤인지 가늠키 어려웠다.
아이가 큰길로 내려서기만 하면 기겁을 하며 달려와 손을 잡아끄는 그녀를 보고 그녀의 친척들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버려 둬, 그 깐 년 차에 치어 죽으면 그만이지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자발을 떨어.”
친척의 고함에 그녀는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그녀의 표정에 나타난 홍조는 그녀의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러한 친척들의 표현은 실제 포장도 아니고 역설도 아닌 그들 모녀에 대한 솔직한 감정 같았다. 그들이 현재 그녀들을 떠맡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그들은 그녀들과 공존하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부담을 느끼는 듯 했다.
그녀도 스스로 동네 친척들과 동등하게 섞이지 못함을 알고 있었음인지 점점 잔치나 다른 큰 일에도 전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동네 밖으로 돌아다니며 자신의 친척이 얼마나 자신에게 못되게 하는지 알리고 다녔다. 그녀의 말은 곧 바로 날개를 달고 돌아 왔다. 이런 이유로 그녀의 친척들은 두 모녀가 마을 밖으로 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할 수 없이 김치를 담아주고 잔치 때면 불러내어 남은 밥과 반찬을 주었다. 그럴 때마다 보통사람 보다 서너 배나 큰 밥주머니를 가진 그녀의 먹음새에 모두들 경악했다. 어떻게 그 많은 밥을 뱃속에 넣을 수 있을까?
명옥도 그 광경을 처음 목격했을 때 무척이나 놀라웠다. 어떻게 저렇게 산더미 같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이 먹는 틈틈이 아이를 붙잡아 한 숟갈이라도 더 아이의 입에 넣어주려고 애를 썼다. 그녀가 비록 모자란 사람이라 하더라도 새끼를 향한 모성만큼은 모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과하게 먹이는 바람에 아이가 토할지라도 그래서 아이가 해를 입는다더라도 그건 모두 사랑의 결과이리라.
날이 섰던 명옥의 가슴이 마당에서 따사로운 볕을 받으니 봄눈 녹듯 편안해짐을 느꼈다. 명옥은 자신이 일군 텃밭에서 푸른 싹들이 올라오는 게 너무나 신기하여 아이를 보듬듯 그 주변의 풀들을 매주었다.
마당 끝에서 흰털강아지 뽀솜이가 왠지 힘이 없이 걷는 게 보였다.
꼬리를 내리고 걸으며 털빛이 거칠고 추레해 보였다. 비실대며 마당을 가로질러 쪽문 밖으로 내려서더니 주저앉아 도랑물을 먹었다. 그러고 있는 게 평소의 뽀솜이 같지 않아 옆집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무래도 쥐약을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명옥은 가까이 가지 못했다. 거듭된 강아지들의 죽음에 무뎌진 것이 아니라 갈수록 죽음이 낯설고 두렵기 때문이었다. 뽀솜이는 바로 죽지 못했다. 비실비실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미가 묶여 있는 베란다로 올라와 어미 곁에서 한참동안 있더니 다시 마당 아래로 내려가 누웠다. 그리고는 죽었다. 사력을 다해 마지막으로 어미를 상면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숨을 거둔 뽀솜이... 너무 어려 어미처럼 묶어 놓을 수가 없어서 자유롭게 놔둔 게 화근이었다.
아프다고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히 가버린 사실이 더욱 가슴이 아팠다. 남편이 돌아 올 때까지 명옥은 그 근처에 가볼 수 없었다. 확실하게 죽었는지 조차 확인도 하지 않고 있다가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죽음을 알렸다. 멀찍이 떨어져서 죽은 게 확실하다는 남편의 싸인을 받고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베란다에 있던 어미에게 이제 너도 나처럼 새끼가 하나도 없게 되었구나 하며 어미의 배와 등덜미를 쓰다듬었다.
남편은 이번에도 뒷산으로 갔다. 삽과 죽은 강아지가 든 종이 박스를 들고 산으로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명옥은 남편이 자신처럼 죽음이 두려우면서도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태연을 가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남편의 약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명옥 자신이 너무 자기 입장에서만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