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의 대동제 (외 1편)
서상규
봄 햇살에 불땀을 활활 돋운
풀무질로 대장장이 금생이
팔뚝근육이 불거진 담금질로
노적봉에 삽날을 벼려
땅심 붉은 황토를 갈아엎는다
청상의 청암부인 눈물이
한으로 둔덕진 이랑 이랑에
한 알 한 톨 씨앗을 파종한다
속울음으로 여름 빗줄기를 뿌려
가문 뿌리를 적시고
줄기 푸르른 배흘림으로
종가의 솟을대문을 세운다
당골네 백단이가 단풍빛 활옷을
춤사위로 너풀대는 풍년제 한마당
백정 탁주가 피 묻힌 칼도
뭇 생명들의 극락왕생을 빈다
제 몫, 제 살림으로
땀방울 여문 곡식이 거두어진다
초설(初雪)을 쪄낸 백설기로
돌상을 차린 듯 한 해를 축원한다
뼈마디에 혼불을 밝히고
운명을 순명으로 견디는 사람들의
가난이 풍성하다
(혼불시 으뜸상, 10/13)
설악에 오르다
오색에서
나머지 둘의 무지개 빛을 찾아
설악을 오른다
이미 환해진 속마음을 감추고
맨 처음 산을 밟은 신성한 이를 따르는 산행
환(幻)의 각(覺)에 피안을 오르듯
잎새 하나에도 눈길이 걸려 넘어진다
십이 선녀탕에서 그만,
눈부신 알몸을 훔쳐보다가
새파란 귀때기청봉이 경(經)치는 일갈에
확확 달아오른 두 뺨의
먹먹한 귀 울림이 첩첩산중을 메아리친다
부끄러움으로 가벼운 공기에도 무거워지는
발걸음마다 숨이 턱을 치받는 한계
나무의 千佛, 千色 색감에 휩싸여
찾을 수 없는 미완의 두 빛깔
色界의 병풍 친 벼랑길을 돌고 도는
바쁜 마음이 대청봉을 끌어당기지만
산정은 멀기만 하다
정상이란 생각에 마음을 멈추면
길 앞에 또 길이 놓여있어,
가파른 생의 발길을 늦추지 않으면
어느덧 길(道)은 길(道)을 잊고
하늘의 절정에 닿는다
일곱 빛깔을 아우르는
흰빛무리의 雪嶽 운해
화엄의 깃에 실린 넋이
동해 수평선으로 풀려나간다
(한국산악문학상,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