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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시인이여 / 강이슬

 

 

 

 

시인이여

 

                               시 : 강이슬

                             그림 : 김성로

 

 

한(佷)도 서리지 않은 넋두리나

어설프게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길거리 여자들의 몸짓 같은 유희로

시인이여

시를 벌거벗긴 채 길 위에 세우지 마라

 

익지 않은 문장을 즉물적(卽物的)으로 나열하고

떫은맛을 포장하여 양심을 외면한

가식에 침을 뱉지도 못하는

시인이여

시를 모조품으로 내 던지지 마라

 

피를 토하는 아픔이거나

가슴 한편을 도려낸 정(情)도 아니고

풍자와 여유로도 잔을 채우지 못하는

시인이여

시를 저잣거리 술안주로 내 놓지 마라

 

깊이도 넓이도 없는

사상의 메마른 바닥을 드러내어

대중 속에 뿌리내릴 터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시인이여

시를 고독으로 시들게 하지 마라

 

현실의 혼탁한 광풍 속에서

혼을 지켜주는 바람막이도 못되고

화려한 은유로 세태를 야유하지 못하는

시인이여

시대의 어지러움에 등을 보이지 마라

 

소름 돋게 하는 오싹한 화두나

팽창해서 터져 버릴 것 같은 함축

벙어리 냉가슴 앓는 절실함이 아니면

시인이여

쓰지 못하는 시로 차라리 침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