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비루/悲淚 한 슬픔의 종영을
시 : 소강백은숙
그림 : 솔뫼 김성로
빈 고동 속에 몸을 눕히고 새우잠을 청하는
나그네 게의 바튼 숨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분노를 잠재우지 못해
스스로 목숨 삼키고 비명한 파도가
다시 부활하는 힘겨운 현장을 목격했는가
지병으로 자리 잡은 뿌리 깊은 고갈증
통쾌하게 해소시킬 비상한 처방이 있다면
한 생애 흠뻑 젖어 살아도 좋지 아니하겠는가
채운다고 쉽게 채워질 허기 아니라면
벗는다고 홀가분해질 무게 아니라면
비굴하게 무릎 꿇을 이유 없지 않겠는가
잠잠한 바다 한 가운데 별 쏟아 붓고
혼돈을 일 삼아온 어제의 과오와
우직한 바위의 집념을 교란시켜
무수한 모래알을 낳게 한 음모
묵인할 수 있겠는가
길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섬
한없이 출렁이는 블루빛 추억과
욕심껏 끌어안은 오렌지빛 우주까지
시간을 거꾸로 돌린 그 바다에 수장해도
후회는 없겠는가
죽도록 사랑해서 행복했던 순간도
모질게 돌아앉아 쓸쓸하던 순간도
푸른 심연 깊숙히 닻을 드리우고
이젠 함구할 수 있겠는가
다만 빛바랜 기억 한 모퉁이
아련한 이름 한 자 솟대로 세워놓고
우리 설운 생을 오롯이 지켜줄
마지막 향기로 남겨둘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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