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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그림과 시(picture poem)

살풍경 말그내 / 배문석

 

                       

 

 

 

살풍경 말그내


                詩 / 성우 배문석

                畵 / 솔뫼 김성로



밤에 돋는 별이 살갗에 스며들어

뇌수로 간 까닭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레미제라블 마뇽의 상실로부터


밤마다 물음을 던지고 간 희미한 빛줄기에서

사금파리에 잘게 빗금 그어진

시간의 틈바구니로

뿔뿔이 풀빛으로 흩어진 이름들


흙내음 물신거리는 고랑 너머로

삼베 적삼과 짚신 몇 켤레와

물동이에 허기를 나르던

물결 같은 얼굴들은

이름표만 내게 쥐어주고 지나갔다.


동네 어귀나 마을에 귀를 댄 시루봉 사타구니로

꽃상여가 나가던 날

구성진 눈물들이 바람처럼 죽음을 떠나보내고

동네는 고개를 꺽은 채

시름은 길모퉁이에 만장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길게 펄럭이는 상여소리가 잦아들고

개들 하품하는 혀 사이에 해가 걸려 있는 동안

흙먼지 일으키며 달리는 자동차소리들이

팽나무길을 따라 

풀짐 진 청춘의 검정고무신에 몇 겹씩 스며들었다.


온몸에 스민 동경과 탈출 그 설레임이

푸른 터널을 넘나들듯이

어둠이 깊어질수록 꿈결에 잘랑거리는 워낭소리처럼

도회로 가는 꿈은

헐거운 바지춤을 들락이고

어느 청춘은 상어 뱃속 같은 도시로 흘러갔다.


언제나 품으로 들이거나 떠나가는 핏줄에게

살가운 얼굴로 손 흔들어 보내는 일을 잊지 않고

힘겨운 발길들을 마중하는 말그내 풍경들은

팽나무 꼭대기에서 기다림의 염주알을 굴리고 있었다.


말그내는 낡고 품위없이 세월에 깎이면서도

시루봉과 알뫼산이 내려다보는

그윽한 눈빛으로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처럼 눈을 뜨고 

고즈넉이 품에서 키워낸 개구장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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