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목장, 그 바람의 언덕에 서서
시 : 김 태수
그림 : 김성로
윙윙거리는 몸짓 하나만으로
양떼목장, 그 바람의 언덕에 서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것, 만져지는 것, 맡는 것
무엇이든 안아줄 듯
소멸과 생성을 깨우치는 바람을 만나보았네
드러내지 않겠네
나서지 않겠네
볼멘소리조차 내지 않겠네
하여, 어느 한 가지라도 감히 하겠다고 나서지 않겠네.
양떼 머무는 울타리 밖에서
거침없는 바람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불안해하는 억새처럼
이곳저곳 뿌려져
개평이나 얻을 수 있다면 억울하진 않겠네.
때로는 속절없이 재우치듯 등 떠밀려 마지못해
다가갈 순 있지만, 팔짱 낀 채
마냥 서 있을 수도 없고
다리 꼬아 거만하게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듣고, 맛을 느끼는 것만 느끼고, 만져지는
것만 만지고, 냄새는 맡을 수 있는 것만 맡으라는 말
이젠 알아들었네.
나는 무엇인가
만남, 낙엽, 순한 양의 눈, 날리는 건초, 촛불 같은 인생, 흘러가는 구름, 꽃향기, 두엄냄새
그리고 백여 가지 정도 되고도 남음 직한
그 숱한 것들
모두가 바람과 맞서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네
그런 건가
그래서 작디작은 뿌리 한 가닥 내릴 수 없는 것인가
양떼목장, 그 바람의 언덕에 서서
깃발을 흔들며 환호성 치는 바람 아니어도 좋으리
그저, 처음 이 땅에 나와
세상 가운데
구겨진 옷 한 자락 다려주는 바람이 되고 싶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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