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산사(3)
그 때도 보련화는 혜원의 막힘 없는 법문에 차츰 존경하는 눈빛을 보냈고, 혜원의 선화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보련화는 좀처럼 우울하고 창백한 낯빛을 버리지 못하였다. 혜원은 자신의 해박한 법문과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던 선화가 보련화의 표면에만 머무를 뿐임을 깨닫고는 자기자신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무엇 때문에 그토록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했었는지, 중생 하나 구제할 능력도 없는 자신을 왜 그렇게 몰랐었는지.
이러한 한계를 느끼자 혜원의 마음에는 잡티처럼 회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생의 마음 한 번 굽어볼 줄 모르는 자신의 수행생활이 이면의 진실을 모르는 체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수험생만 같았다. 새벽 세시 반에 도량을 돌고, 불경을 외우고, 목탁을 두드리며 절을 하고, 녹차를 마시고 선화를 그리는 수행이 덧없는 일로 여겨졌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사념이 길어가자 마음은 흐트러졌고 온통 무언지 모를 뜬구름에 실려가듯 마음이 붕 떠올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즈음 안개처럼 뿌연 모습으로 한 여자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처음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부정에 빠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 그 모습이 뚜렷해지면서 혜원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보련화였기 때문이었다.
보련화가 상실감을 호소해 왔을 때, 혜원 자신은 어떻게 법문을 주었으며 충고해 왔는지… 혜원의 충고대로 자신의 본성에 단단한 기둥을 세우려는 보련화의 몸부림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더욱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혜원이 어둠 속에 빠져 헤맬 수록 보련화는 법당에서 지내는 날이 더욱 많아져 갔고 사군자 중에서 난을 택한 후론 눈빛도 깊어 가는 듯 싶었다. 고통과 상실의 자리를 불심으로 채워보려는 보련화의 노력이 처절해보였다.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자리는 욕망으로도 이상에 대한 열정으로 채울 수 없는…, 그곳이 바로 본성의 자리임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석은 저야 그 자리를 신심으로 채워야 되겠지요.”
이런 보련화의 정진 앞에서 혜원은 더욱 얼굴을 자주 붉히고 말을 더듬었으며 눈빛을 흐려갔다. 묵향이 도는 자신의 승방에서 보련화를 안아보듯 보련화의 화선지를 안아보았다. 난을 치기 위해 단 둘이 있게되면 보련화의 살내음이 맡아지면서 잠자고 있던 감각 세포들이 하나하나 들고일어나 견딜 수 없게 했다. 밤마다 혜원은 욕망과 죄의식에 몸부림 쳤다. 세 시 반에 도량을 돌던 의식에도 하루 세 번의 공양에도 매일의 사시 맞이 예불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행자가 법당 밖으로 나왔을 때, 안개는 저만치 물러나 있고 대신 절 마당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가끔 지나가던 새들이 산사에 들렀다가 산사의 정적이 힘에 겨운지 서둘러 날아갔다. 산사에 들어 온지 이 삼 년이나 된 행자지만 아직도 이런 정적에 익숙지 않다. 떠들썩한 도심과 화려한 불빛을 더 동경할 나이에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산사에 들어 왔으나 다른 것보다도 이런 정적이 너무나 싫다. 그나마 어머니 같던 공양주가 떠나고 주지와 단 둘이 살게 되면서 도시 같은 번잡함은 관두더라도 따스한 사람 소리라도 나는 것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그래서 가끔씩 들르는 보련화가 소중했다.
산사 마당 끝에 있는 돌쩌귀에 걸터앉자 새소리를 흉내 내며 요사채에서 들려오는 혜원의 낮은 음성에 귀 기울였다.
“난 잎들은 서로 엉키어도 안되고 마주 보아도 안 됩니다. 우물 정자 모양이어도 안되고 쌀 미 자가 되어서도 안되지요.”
“기본적인 세 잎을 그리고 나면 그 잎 왼쪽 오른쪽에 늙은 잎 마른 잎 등을 그려서 세 가닥 잎의 단순함을 피해야 하며 또한 번잡하게 많이 그려 넣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산사의 겨울은 참으로 길었다. 초록의 새순이 싹터오는 봄부터 한치 앞도 볼 수 없도록 빽빽하게 수풀이 우거져 마냥 끝없이 계속 될 것 같은 여름은 차라리 견디기 쉬웠다. 울창했던 숲들이 하나 둘 빈가지가 되어 휑하게 하늘을 내보이고 철새들이 대열을 이루어 어딘 가로 날아갈 때면 행자 자신도 그들처럼 어딘 가로 떠나고 싶어졌다. 산사 마당위로 쓸쓸히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들을 쓸어내릴 즈음이면 그나마 이어지던 객승들과 신도들의 발길도 끊어지고 텅 빈 산사에 나뭇잎 구르는 소리와 산새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눈이 많이 내려 암자를 병풍모양으로 둘러싼 뒷산 숲에서 하루종일 가지 꺽이는 소리가 들려 올 때면 가으내 해다 놓은 땔감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주지 스님의 기도를 돕는 일과 불경 공부하는 일만이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그럴 때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보련화 누님이었다. 언제부턴가 누님이라고 부르면서 친남매처럼 의가 두터워졌었는데…
“가능하면 한번 붓에 묻힌 먹으로 다섯 잎을 단숨에 그려야 하며 메마름과 윤기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보련화는 숨소리조차 나지 않고 오로지 혜원의 낮은 음성만이 밖으로 들려나오는데, 이름 모를 작은 새가 행자의 맞은 편 돌쩌귀에 앉아 행자를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제 딴에도 행자가 참으로 외롭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새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보련화의 눈을 닮아 있었다.
“난 잎은 뿌리에서 나오므로 성글고 빽빽함이 있게 해야하며, 길고 짧게, 굵고 가늘게, 싱싱하고 메마르게 해야 합니다.”
엊저녁 우연히 안부 전화를 걸어온 보련화에게 번에 계셨던 혜원 스님이라는 분이 다시 오셨다는 것을 알리자 보련화는 한동안 말없이 있기만 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일 산사로 갈 것임을 전했다. 평소에도 교통이 불편한 이곳에 안개마저 가득 끼어 산사로 오는 길이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었을 텐데, 이른 아침에 도착한 보련화의 모습을 보고 주지 수님은 무척이나 놀라시는 눈치이셨다.
늘 맑은 미소를 잃지 않던 보련화가 오전 내내 혜원 앞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어 행자는 말 한마디 건네지도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보며 혼자 절 안을 빙빙 돌아 다녔다. 어딜 가도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닌 듯하였다.
오늘 보련화를 보니, 늘 맑게 웃는 웃음 뒤에 석연치 않던 어둠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절에 들를 때마다 승방 안의 달마도에 한참동안이나 머무르곤 했던 보련화의 슬픈 눈빛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언젠가 주지 스님 방안에서 청소를 하다가 무더기로 보았던 이상한 그림들도 떠올랐다.
(계속)